[역경의 열매] 권오승 (11) 보시기에 바람직한 경제 질서 구현 최선

입력 2010-03-01 17:33


“선생님, 우리가 반드시 경쟁하며 살아야 합니까?” 평소 과묵한 편에 속했던 박사과정 학생이 엉뚱한 질문을 했다. 나는 “그럼, 자네는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나”라고 물었다.

학생의 대답은 극히 목가적이고 낭만적이었다. “오순도순 서로 협력하며 살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 학생처럼 대부분이 경쟁의 의미나 가치를 정확히 모른다. 오랜 농경사회에서 경쟁보다 협력을 중시해 온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더 그렇다.

공정거래법은 한 마디로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는 법률이다. 조금 설명하면 시장경제에선 개인이나 기업이 경쟁도 하고 협력도 한다. 여기에서 경쟁이나 협력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경쟁과 협력 모두 필요하다. 이를 제한하는 요소들이 있다면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 규제에 대한 결과는 상대적이다. 예를 들어 기업들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놓고 경쟁하면 소비자들은 좋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값 싸게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경쟁을 하느라 힘겹다. 기업들은 이 때문에 경쟁자를 완전히 물리쳐 독과점 지위를 얻거나 담합을 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진다.

이를 못하게 하는 것이 공정거래법의 역할이다, 당연히 법을 집행하는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을 지켜야 하는 기업 사이에는 견해가 상충한다. 법에 대한 인식 차이가 상당하다.

1996년 서울대 법과대학 공정거래법 연구 과정에 앞서 진행된 오리엔테이션에서 있었던 일이다. 공정거래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대기업 임원이 수강하게 된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공정거래법은 내용이 애매하고 절차가 복잡해 회사 입장에서는 지뢰밭을 밟는 것과 같습니다. 강의를 통해 안전한 곳과 위험한 곳을 구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러자 바로 옆자리에 있던 공정거래위원회 과장이 나섰다. “공정거래법은 도로의 중앙선과 같은 것인데, 기업인들이 이를 모르고 침범합니다. 이로 인해 다친 뒤에는 이 법을 지뢰밭이라고 비난합니다.”

강의에 앞서 서로 인사하는 자리인데도 공정거래법에 대해 몇 마디 나오자마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나는 얼른 일어나 상황을 진정시켰다.

“공정거래법이 도로의 중앙선과 같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앙선이 똑바로 그어져 있지 않거나 분간 못할 만큼 희미하게 그어져 있다면 기업만 탓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경제법을 연구하는 교수로서 나의 역할은 중앙선을 똑바로, 그리고 분명하게 긋도록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바람직한 기준을 찾기 위해 미국과 독일 일본 등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의 사례를 비교 연구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델을 찾는 게 그동안 내가 해 온 일이며 내 인생의 목표였다.

하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뒤 역할과 목표를 근본적으로 업그레이드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람직한 경제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람직한 경제 질서를 연구하고 교육해 이 사회에 반영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현재의 경제질서 모습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문제점들을 찾아내며, 주 안에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이뤄질 수도 없고, 한두 사람의 힘으로 실현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또 방안을 찾아냈다 하더라도 실제 사회에 구체화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고민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학자인 내게 맡기신 소명이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