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용조 목사와 닉 부이치치 대담

입력 2010-03-01 15:30


[미션라이프] “나도 많이 아파보았지만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위대하심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미소청년’ 닉 부이치치는 성령의 역사에는 나이가 따로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케 해줬어요.”

40여년전 폐결핵을 시작으로 당뇨, 고혈압, 7차례 암수술, 혈액투석, 심근경색, 부정맥 등 ‘종합병동’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하용조(65) 온누리교회 담임목사가 지난달 23일 ‘수족 없는 삶(Life Without Limbs)’ 설립자 닉 부이치치(28)를 만난 뒤 한 말이다. 21일 내한한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부이치치는 28일까지 온누리교회, 대구동신교회, 부산 호산나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분당 만나교회 등을 순회하며 어떤 것도 불평할 이유가 없다는 감동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절 보고 단 한 사람이라도 삶에 용기를 얻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라고 고백했다.

본보는 부이치치와 하 목사의 만남을 통해 어떻게 육체적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교회와 성도는 어떤 자세로 어려움에 대처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두 사람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뭐가 부족하다고 하나님께 항변할 수 있을까요”라고 했다. 대담은 23, 25일 서빙고동 온누리교회에서 이뤄졌다.

-두 분 모두 육체적 핸디캡을 갖고 있는데요. 자신의 육체적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시나요.

◇하용조 목사=처음엔 하나님이 내 병쯤은 쉽게 고쳐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랜 세월 아프면서 하나님의 섭리, 비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와 더욱 친밀해지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핸디캡, 고난은 축복인 거죠. 고난은 저를 성숙하게 하는 영적 통찰력의 보고뿐 아니라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저는 지금의 아픔을 엔조이하게 됐어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닉 부이치치=육체적 장애는 정신적 장애와는 달라요. 전 모든 세상 사람들이 각각의 아픔과 상처, 외로움 등을 갖고 산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전 육체적 장애가 있는 편이 깨어진 가정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여깁니다. 암으로 투병하는 사람들이나 부모를 잃은 사람들의 아픔을 전 잘 몰라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예수님 안에 소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장애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가 그분의 선물임을 알도록 하십니다. 또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세요. 따라서 어떤 장애가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각종 핸디캡을 갖고 살아가시는 사람이나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에게 전할 메시지는.

◇부이치치=사견이지만 선천적 장애가 훨씬 나은 것 같아요. 만약 장애 없이 출생했다가 사고로 신체 일부를 잃게 된다면 더 힘들었을 겁니다. 제 경우 지금 발이 없어진다면 훨씬 더 큰 비극이 될 것 같아요. 상실감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많은 것들을 새로 배워야 하느라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팔다리 없이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새롭게 배울 것이 없었어요. 따라서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저 최선을 다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라는 겁니다. 이는 저의 부모님이 어렸을 때부터 해 주신 말씀이기도 하죠. 당신이 가진 장애와 상관없이 당신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하고 사랑할 수 있는 ‘오늘’이라는 선물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하 목사=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죽음조차도 그분의 섭리이고 사랑입니다. 암, 불치병, 다리 없는 것 등 고난이 클수록 축복도 큽니다. 부이치치 형제를 보세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죠. 즉, 하나님은 그가 겪은 고통을 통해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 즉 공동체를 형성케 하셨어요. 고난이 깊을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깊어지고 오히려 희망은 커집니다. 건강한 것은 자기 자신을 즐기기 위한 게 아니에요.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라는 하나님의 사인입니다.

-솔직히 건강한 게 더 좋잖아요. 어떤 과정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됐었는지요. 부이치치 형제는 수영도 자유롭게 한다고 들었는데요. 쉽지 않았을텐데.

◇부이치치=8살 때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죽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10살 때 욕조에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죠.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 이 자리에서 앉아 있게 됐죠. 당시 제 삶에 소망이 없다고 느껴졌을 뿐 아니라 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할 수 없었어요. 저는 부모님의 인생에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많은 분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났다면 훨씬 좋지 않았겠느냐고 묻곤 하죠. 저는 그때 반문합니다. 속사람이 상했는데, 겉이 멀쩡하면 무엇이 좋겠는가라고요. 우리는 예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치료자, 친구이자 구원자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계획을 갖고 계세요. 저는 하나님의 계획을 끝까지 좇아가려고 해요. 예수님께서 나면서 장님이었던 한 사람을 고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하셨던 말씀을 읽을 때 저는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저는 어려움이 올 때마다 그 말씀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 목사님은 투석하기 전과 투석한 뒤 목회의 방향이나 철학에 변화가 있으셨는지요.

◇하 목사=물론이죠. 과거엔 하나님의 은혜보다 내 열심, 내 비전, 내 아이디어가 앞섰어요. 4년 전부터 투석을 하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없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 목회를 하게 됐죠. 저를 보세요. 지금은 마음대로 여행도 못하고, 장시간 비행기도 타지 못합니다. 일본이 유일하게 제가 갈 수 있는 곳이죠. 하고 싶은 것도 제한된 환경 속에서 해야 하죠. 건강 유지조차 다른 분의 도움을 받아야 하잖아요. 이제는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목회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돕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처음엔 투석이 매우 불편했어요. 집중력도 떨어지고. 나만 퇴보되는 듯했죠. 그런데 지금은 투석이 곧 안식입니다. 하나님 품 안에서 쉬는 시간이죠.

-사회 약자들에 대한 교회의 역할이 중요한데요.

◇하 목사=그 점에 있어 부끄러워요. 저는 솔직히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살아 본 적이 없어요. 약자, 가난한 사람, 병든 자 등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거죠. 이게 바로 교회의 역할입니다. 저를 비롯해 많은 목회자들이 성장과 부흥에 초점을 맞췄지 사람에 맞추지 못했어요. 교회 크기와 상관없이 교회는 사람을 치유하는 공동체가 돼야 합니다. 사실 교회가 약자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해왔죠. 하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지수는 매우 낮아요. 그것은 태도의 문제, 즉 우리가 많이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한다는 너무 거만한 태도로 인해 국민들을 감동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이나 불교는 일사분란하죠. 반면 기독교는 개교회주의에 빠져있어요. 때문에 도우면서도 외부에 비쳐지는 것은 문제투성이입니다. 대형교회일수록 더 그래요. 팀워크가 잘 이뤄지지 않아요. 대형교회 목회자들끼리는 친할지 몰라도 교회 간 팀워크는 찾아보기 쉽지 않아요. 이는 마음이 가난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세건드맨’이 되기 싫어하죠. 만일 대장이 되면 열심히 할 거예요. 이를 하루속히 고쳐야 합니다. 교회 크기와 영향력과는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목회자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소경이 된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예수님이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셨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이 소경이 그동안 겪어야 했던 역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비기독인들은 너무 잔인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지 않을까요.

◇부이치치=하하. 아직까지는 그걸 물어온 비기독인을 만난 적은 없어요. 하지만 만약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예수님이 장님을 고치시면서 하셨던 말씀을 여전히 인용하고 싶습니다. 제 장애가 누군가를 구원하는 데 쓰이기를 원한 거라면 저는 몇 번이고 같은 삶을 기쁜 마음으로 살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마음으로 지칠 때 또는 영적침체가 있을 때 즐겨 부르는 찬송가가 있는지요.

◇하 목사=‘내 영혼이 은총 입어’를 좋아해요. 1965년 가나안농군학교 44기로 입소했을 때 김용기 장로님이 불러주셨던 곡인데요. 그때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저의 애창곡이 됐습니다.

◇부이치치=다 좋아해서 대답하기 어렵지만, 굳이 한 곡을 들라면 ‘예수 사랑하심은(Jesus Loves Me)’을 꼽고 싶네요.

-부이치치 형제는 많은 나라를 다녔을 텐데. 특히 잊혀지지 않은 게 있나요.

◇부이치치=한국이 29번째 방문하는 나라입니다. 3월 첫째 주에는 일본을 사흘 일정으로 방문할 예정이에요.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잊혀지지 않은 게 많은데, 인도 뭄바이에서의 일이 떠오르는군요. 매춘여성들을 대상으로 제가 간증을 했어요. 집회가 끝난 뒤 한 여성이 찾아왔어요. 그 여인은 “닉, 난 10살때 납치당해서 성매매를 강요받았어요. 빚을 다 갚기까지 3년이 걸렸지요. 지금은 12살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성매매 외에는 아이를 기를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이 길을 떠나지 못했어요. 이번 주에 난 AIDS(HIV) 감염 사실과 성매매 벌금이 부과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내 상황은 암담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해요”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최악의 순간에 있는 그녀에게도 희망이 되셨어요.

-일전에 만난 일본 목회자들이 육체적 어려움 속에서도 설교 강단에 서는 하 목사님에 대해 놀라워하던데요. 설교하실 때마다 어떤 마음이 드세요.

◇하 목사=설교한다는 게 저에겐 또다른 감동입니다. 잘하고 못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시간, 건강, 여건이 허락하는 한 설교하다가 죽겠다는 생각이 골수에 사무쳐요. 더 감사한 것은 저 같은 사람의 설교에 회심하고 용기를 되찾고 변화되는 성도들이 있다는 거죠.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부이치치 형제, 한국의 청소년들을 향한 도전의 메시지가 있다면.

◇부이치치=하나님은 당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들의 힘으로 하려고 하면 힘들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잊지 마세요.

-앞으로 계획은.

◇하 목사=올초 교회적으로 50일간 특별 새벽 부흥집회를 했어요. 많은 성도들이 기쁨으로 동참하셨어요. 올해 교회 표어가 말씀과 성령인데요. 여기엔 기도도 물론 포함되죠. 이제는 여기에다 성경통독을 덧붙였으면 좋겠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50일간 성경통독 저녁집회를 하면 어떨까 해요. 부이치치 형제를 올해말 또는 내년에 다시 초청할 계획입니다. 부이치치 형제가 온갖 유혹 속에 살아가는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도전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장을 마련하면 좋겠어요.

◇부이치치=오는 10월 미국에서 저의 첫 책이 나올 예정이에요. 내년엔 한국어 번역본도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모든 계획을 하나님께 맡겨요. 다만 바라기는 방송이나 인터넷 등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하면 좋겠어요. 여행은 조금 덜 하면서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도전, 위로를 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서로를 격려하는 덕담을 나누신다면.

◇하 목사=당신 존재 자체가 희망입니다. 지금의 자세를 계속 유지하길 바라요. 아울러 당신의 사역 파트너가 되고 싶어요.

◇부이치치=한국을 처음 방문하도록 초청해주신 하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사회·진행=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