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약국(46)

입력 2010-03-01 14:18

9000만원 배달부

며칠 전,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다. 어렸을 때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서울의 어느 교회 장로님이 우리 교회에 9000만원을 헌금했다. 시골에 있는 땅을 팔고 받은 금액의 10분의1이었다. 교회 통장으로 송금을 해도 되련만, 예의가 아니라고 부부가 봄비를 맞으며 내 사무실로 들어섰다. 장로님 부부가 춘천을 향해 오는 동안 나는 내내 걱정이 생겼다. 헌금을 받은 후에 내가 해야 할 사례, 즉 어떤 말로 감사를 해야 하며, 무슨 기도를 그 앞에서 해야 할까 같은 것들이었다.

드디어 9000만원이 찍힌 수표를 정갈한 태도로 장로님이 나에게 건네주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봉투를 열어 금액을 확인한 후, 잠시 멈추었다가 내가 말했다. “기도를 어떻게 할까요?” 장로님이 원하는(?) 대로 기도를 하겠다는 게 내 마음이었다. 이를테면,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원하면 그렇게 하고, ‘자식을 위해 3~4대까지 기도해달라’고 하면 그렇게 할 심산이었다. 그런데 장로님이 뜻밖에 이러신다. “하나님의 심부름이나 하는 배달분데 무슨 기도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비도 오고하니 서울 가는 길이나 안전하고 즐거우라고 해 주세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셸 실버스타인)라는 책이 있다. 나무는 놀이터나 휴식처가 된다. 과일도 낸다. 집이나 배를 만드는 재목이 된다. 모두 잘려 나간 뒤엔 소박한 그루터기가 되어 힘없는 노인들의 의자가 된다. 이렇게 조건 없이 평생 자신을 사람과 자연에 내준다는 내용이다.

‘나무의 죽음’(차윤정)이라는 책도 있다. 오래된 숲속 나무는 200년 넘게 살면서 많은 것을 주지만, 200~300년을 걸쳐 죽어가는 과정에서도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숲을 포함한 생태계에 쉼 없이 준다. 나무의 겉껍질은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의 좋은 음식이다. 작은 구멍은 훌륭한 벌레집이 되고, 그 애벌레를 잡아먹는 딱따구리에게는 좋은 사냥터다. 딱따구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균사 같은 것을 부리로 나무에 옮긴다. 나무의 상처에서 나오는 수액은 벌, 개미, 나비, 나방에게 좋은 음료수다. 이렇게 숲속 전체 생물종의 30%가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살아간다.

나무는 이처럼 삶과 죽음이 모두 생명활동으로 통일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떤가. 죽으면 ‘딸깍’ 하고 모든 게 끝나지 않는가? 나무는 사는 과정이나 죽는 과정이 더디고 길다. 사람들은 ‘개인상속’을 하지만 나무는 ‘사회상속’을 한다.

가끔 오래 된 나무 같은, 이런 사람을 만나는 일은 생애 가운데 큰 행복이다.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