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희망, 强小기업-(35) 잉크테크] 신사업 ‘인쇄전자’ 제품 시장서 각광
입력 2010-02-28 19:12
‘프린터는 달라도 잉크는 잉크테크.’
2002년 TV 광고에서 탤런트 차태현이 부른 로고송이다. 프린터 리필잉크를 써본 사람이라면 잉크테크란 이름을 모를 리 없다. 1992년 설립돼 국내 처음으로 리필잉크를 생산한 잉크테크는 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급성장했다. 그전까지 많은 사람이 리필잉크에 관심이 없었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비싼 정품 잉크의 저가 대체품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잉크테크를 세운 정광춘(57) 대표는 카이스트 화학과 박사 출신. 정 대표의 꿈은 벤처 개념의 연구소를 운영해 마음껏 연구하면서 기술이 필요한 중소기업을 돕는 것이었다. 박사과정을 마쳤을 때 이사급 연봉을 주겠다는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도 마다하고 개인 연구소를 차렸다.
글자 수정액(화이트)을 개발하고 특허도 냈다. 하지만 영업 및 마케팅 역량이 부족해 사업은 실패하고 말았다. 정 대표는 “당시 빚 갚는데 3년 걸렸다”며 “잘 만들기만 하면 잘 팔릴 거라는 환상을 깨주는 수업료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조업을 제대로 해서 수익을 내고 그것으로 연구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91년 잉크젯 프린터가 국내에 처음 소개됐을 때 “이거다” 싶었다. 프린터 업체의 정품 잉크가 너무 비싸다는 점에 착안했다. 품질이 엇비슷한 리필잉크를 만들어 싸게 내놓았다. 새로운 시장을 연 것이다.
하지만 이 시장은 중국 등 후발업체가 많아져 점점 레드오션이 돼가고 있다. 정 대표의 고민도 시작됐다. 2003년 연구를 시작해 2005년 첫 열매를 맺은 신사업이 ‘인쇄전자(Printed Electronics)’다.
인쇄전자란 전기회로를 인쇄하듯 찍어내 전자부품을 만드는 것을 뜻한다. 구리를 입힌 뒤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내는 기존의 에칭기법 대신 필요한 회로 부분만 전자잉크(전기가 통하는 잉크)로 그리는 방식이다.
잉크테크는 2005년 은(銀)을 완전히 녹인 형태의 투명 전자잉크를 개발했다. 은 입자를 잘게 쪼개 만드는 기존 전자잉크보다 발전된 기술이다. 투명 전자잉크로는 얇은 플라스틱 필름이나 종이 위에도 전기회로를 찍어낼 수 있다.
전자잉크를 활용하는 인쇄전자는 쓰임새가 많다. 인쇄회로기판(PCB), LCD 반사필름, 전자태그(RFID) 안테나는 물론 태양전지, 메모리반도체 등에도 적용 가능하다. 정 대표는 “기존 에칭기법으로 만드는 것보다 공정을 단축하고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당초 예상한 대로 인쇄전자 시장이 빨리 열리지는 않았다. 맨땅에 헤딩하듯 개발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았다. 지난 4년 동안 인쇄전자를 비롯한 신규사업에 350억원을 쏟아 부었다. 2006년부터 3년 내리 적자가 났다. 하지만 정 대표는 별로 조급해하지 않았다. “주변에선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무엇이든 안 될 것을 생각하고 가면 잘 안 되게 마련이다. 된다는 확신을 갖고 밀어붙여야 되는 방법이 떠오른다.”
지난해 잉크테크는 사상 최대 매출(487억원)을 올리고 흑자 전환했다. 신사업 투자가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휴대전화용 반사필름 등 인쇄전자 양산 제품들이 안전성을 인정받으며 매출을 발생시켜 전년 대비 600% 이상 성장했다. 올해 전체 매출 목표는 720억원이며 이 중 신규 사업에서 300억원 이상을 달성할 계획이다.
터치스크린 패널에 들어가는 은 페이스트 잉크도 잉크테크가 기대하는 분야다. 은 페이스트는 패널에서 터치 위치를 인식하게 하는 촘촘한 전극선으로 사용된다. 원래 터치 패널 전자재료는 일본 기업들이 독점해온 분야인데 잉크테크가 잠식에 나섰다. 정 대표는 “일본 업체로부터 기술 제휴 제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벌써부터 인쇄전자 이후도 준비하고 있다. 잉크테크가 축적한 잉크젯 기술을 바이오산업에 접목시킨 ‘바이오 잉크’가 그것이다. 정 대표는 “바이오칩, 바이오센서에 들어가는 물질의 가격이 향후 경쟁 심화로 낮아진다면 미세한 양도 필요한 곳에 정확하게 떨어뜨릴 수 있는 잉크젯 기술이 필요해질 것”이라며 “5년 후를 내다보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월공단(안산)=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