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 총결산-① 출전 자세가 달라졌다] 신분 상승보다 자아실현에 의미
입력 2010-02-28 21:21
한국은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올림픽에서 한국은 종합순위 5위라는 역대 동계올림픽 최고 성적을 거뒀다.
스포츠는 국가의 힘과 품격을 말해준다. 세계를 이끌어가는 선진국 가운데 스포츠 후진국은 없다. 하지만 금메달을 많이 땄다고 곧바로 강대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어떻게 기억하고 되새겨야 할까.
◇경쟁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올림픽에 출전하는 젊은이들과 그 세대는 10∼20년 뒤 해당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 김연아(20·고려대) 등 밴쿠버 대회에 나선 한국 선수들은 지금 대학생 신분이지만 10년 뒤에는 30대, 20년 뒤에는 40대가 된다. 한국을 이끄는 중추 세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김연아 등은 밴쿠버에서 기성세대와는 다른 사고 체계를 보여줬다. 가장 달랐던 점은 ‘경쟁’에 대한 생각이었다. 기성세대는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했으나 이들은 경쟁을 다르게 해석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제통화에서 “과거 올림픽에 출전했던 한국 선수들은 메달이 먹고 사는 문제, 즉 사회적 성공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김연아 등은 올림픽 메달을 자아실현의 한 과정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진단했다.
◇내 능력 최고치 확인, 은메달도 기쁘다=다른 나라 어느 선수보다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 능력의 최고치를 확인하고 싶어 열심히 운동했고, 그 결실이 메달로 나타났다. 김연아는 예전에 “아사다 마오를 라이벌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 경쟁 상대는 오로지 나 자신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남자 쇼트트랙 선수들은 27일(한국시간) 5000m 계주에서 당초 목표인 금메달을 놓치고 은메달을 땄지만 환하게 웃으며 시상식을 자신들의 축제장으로 만들었다. 값진 은메달을 따고도 메달을 아예 따지 못한 선수들보다 더 서럽게 울던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내 스탠더드(기준)는 한국이 아닌 세계=김연아, 모태범(21) 이상화(21) 이승훈(22·이상 한국체대), 이정수(21·단국대) 등 금메달리스트들의 시야는 국내에 한정돼 있지 않았다.
김연아는 몇 년 전부터 토론토에 거주하며 동계스포츠가 중요 생활체육인 캐나다인들의 전통과 생각을 배워나갔다. 피겨스케이팅 선수에 대한 대우가 국내와 다른 북미 본고장에서 피겨의 스포츠적 특성과 예술적 감각을 조화시켰다.
모태범 등은 지난해부터 외국에서 열리는 각종 국제 대회에 빠짐없이 참가하면서 자신을 세계적 기준에 맞춰나갔다. 다양한 해외 전지훈련을 통해 자신이 세계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 어느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이들은 밴쿠버에서 강대국 선수를 만나도 담대하게 경기했고, 본인 능력을 100% 발휘했다.
선수들은 메달을 딴 뒤 태극기를 찾았다. 이들의 눈은 세계를 쳐다봤지만 심장은 조국을 향해 있었다. 김연아 등은 한국이 세계 각 분야에서 어떤 태도와 방식으로 경쟁해야 하는지 모범 사례를 제시했다.
밴쿠버=이용훈 기자 co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