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이사 감축… CEO권한 강화 포석?

입력 2010-02-28 18:54

주요 대기업들이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 수를 줄이고 있다. 신속한 의사결정을 통해 위기에 적극 대응한다는 차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일부에서는 최고경영자(CEO)의 친정체제를 강화하려는 속내가 담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 23일 이사회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 이사 2명 후임으로 1명만 추천했다. 이사회 절반을 사외이사로 하는 규정에 따라 사내이사도 1명 줄었다. 9명이던 이사회 구성인원이 7명(사내이사 3명, 사외이사 4명)으로 줄었다. 2003년 14명이던 때와 비교하면 절반에 불과하다.

포스코는 26일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를 6명에서 5명으로, 사외이사를 9명에서 8명으로 줄이는 정관 변경안을 의결했다. 사내이사 4명이 물러났지만 3명만 후임 이사로 임명했고 보조를 맞추고자 사외이사인 제프리 존스 전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의 후임은 뽑지 않았다.

LG디스플레이도 이사 수를 9명에서 7명으로 줄이고 정관 수정안을 주총에 상정할 예정이다. SK에너지, 현대종합상사 이사 수도 줄어든다.

삼성전자의 남은 사내이사 3명은 이사회 의장인 이윤우 부회장과 최지성 대표이사 사장,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윤주화 사장 3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 사장과 윤 사장은 ‘이재용 시대’를 열 임원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라며 “사외이사 수마저 줄어 실제로 최고운영책임자(COO) 이재용 부사장의 입김이 커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포스코에선 포스코 회장 경쟁자였던 윤석만 포스코건설 회장 등 정준양 회장과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이사진 4명이 물러났다. 정 회장의 친정체제가 강화됐다는 평가다. LG디스플레이 권영수 사장은 실적을 바탕으로 그룹 오너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CEO다. 3년 임기가 끝났지만 지난해 말 인사에서 유임됐다.

반응은 엇갈린다. 속도가 경쟁인 시대에 빠른 의사결정으로 효율성이 높아지면 업체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이사 수를 줄여 조직을 슬림화하면 아무래도 의사 결정 속도가 빨라지고, 이런 체제는 급격한 경영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의사 수렴에 허점을 노출할 수 있고 CEO의 권한이 비대해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사회가 슬림화되면 그만큼 CEO 권한이 커지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효율을 앞세워 사내이사를 줄이다보니 사외이사도 줄었다”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면서 회사의 의사결정을 견제·감시하는 사외이사제도 도입의 취지가 퇴색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도훈 기자 kinch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