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 기획] 日 재판부, 임금지급·피해보상 명령 단 한건도 없어

입력 2010-02-28 19:17


제1부 일본 3대 재벌의 전쟁범죄

① 왜 기업이 문제인가


끝나지 않은 전범기업 상대 투쟁


반세기가 다 돼서야 머리가 하얗게 된 할아버지 할머니는 일본 내 옛 작업장을 찾았다. 임금을 돌려 달라고 했다. 화를 내 보고 소리를 질러봤다. 돌아온 건 차가운 침묵이었다.

소송을 시작했다. 낯선 일본 법정에서 원고석에 앉았다. 어떤 이는 소송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렇게까지 했는데, 일한 만큼 대가를 받아낸 사람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1990년대부터 소송 잇따라=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은 1990년대에 들어서야 시작됐다. 지금까지 일본과 한국 법정에 제기된 소송은 10여건. 신일본제철(일본제철의 후신),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 등이 피고가 됐다. 원고들은 받지 못한 임금과 위자료를 달라고 요구했다.



소송은 대부분 패소했다. 고 김순길(1998년 별세)씨는 1992년 나가사키지방재판소에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그는 소송 진행 도중 숨졌고, 최종심에서 졌다. 이근목씨는 95년 미쓰비시중공업에 소송을 걸었는데 재판부는 “기업 책임이 없다”며 기각했다.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한 여운택·신천수씨의 소송,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양금덕씨 등 나고야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출신 8명의 소송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기각 판결을 받았다.

일본 재판부가 일본 기업에 보상 명령을 내린 경우는 아직까지 한 건도 없다. 단 2곳에서 화해가 이뤄졌을 뿐이다. 91년 가장 먼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벌인 고 김경석(2006년 별세)씨가 합의해 410만엔의 위로금을 받았다. 피고 일본강관 측은 “법적 책임은 인정하지 않지만 김씨가 상해로 오랫동안 고통받은 데 대한 성의 표시”라고 했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출신 3명은 후지코시를 상대로 한 소송 1·2심에서 패소한 뒤 2000년 3심에서 기업과 합의했다.

몇몇 피해자는 일본 내 소송에서 진 뒤 우리나라 법원에 소송을 냈다. 여운택씨는 2005년 2월 서울중앙지법에 신일본제철을 피고로 해서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3년여 뒤 판결에서 “국제법상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의 효력이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된다”며 기각했다.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들도 일본 재판에서 진 뒤 부산지법에 소를 냈다. 1·2심에서 잇따라 졌다. 2심 재판부의 답변은 “이미 일본에서 확정 판결된 사안이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영원한 족쇄, 한일협정=일본 재판부는 소송을 기각하면서 주로 세 가지 이유를 댔다. 첫째는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개인은 청구권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여운택·신천수씨 소송에서 재판부는 이 점을 들어 기각했다. 나고야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할머니들 소송이 잇따라 기각된 이유도 한일협정 때문이었다.

‘개인은 청구권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 정부가 2005년 1월 한일회담 문서를 일부 공개하면서 드러났다. 한·일 양국 정부는 똑같이 청구권 소멸 입장을 지키고 있다. 외교통상부는 지난해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의 공탁금은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을 통해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3억 달러에 포함돼 있다고 보아야 하므로 일본 정부에 청구권을 행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2005년 당시 정부가 밝힌 내용만으로는 청구권 소멸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정부에 한일회담 문서 추가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에도 문서 공개를 요구하는 시민단체(일한회담문서 전면 공개를 요구하는 모임)가 있다. 한 강제징용 피해자의 아들은 지난해 11월 “한일 협정은 국민 재산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두 번째 이유는 시효 만료다. 합의로 끝난 후지코시 상대 소송에서 일본의 1·2심 재판부는 모두 ‘시효가 소멸됐다’며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한·일 간 국교가 정상화된 1965년 6월 22일부터 소멸 시효를 계산했다. 피해자들은 한일회담 문서가 공개돼 실질적 권리 행사가 가능해진 2005년 8월 26일부터 소멸 시효를 계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 나아가 전쟁범죄에 무슨 시효가 있냐는 주장을 펼치는 피해자도 있다.

세 번째 이유는 전쟁 당시 기업과 현 기업은 다르다는 논리다. 1999년 3월 히로시마지방재판소는 “과거 미쓰비시와 현재 미쓰비시는 다른 회사”라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소송을 기각했다. 피해자들은 “일본 재벌은 종전 뒤 미 군정에 의해 해체 과정을 겪었으나 나중에 재결합했다”며 “서로 다른 회사라는 주장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라고 지적한다.

특별기획팀=김호경 권기석 우성규 기자 hk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