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8.8 지진 강타] “젤리처럼 흔들린 칠레”… 콘셉시온市 폐허로

입력 2010-02-28 21:27

“칠레 전체가 젤리처럼 흔들렸다.”

27일 새벽 규모 8.8이라는 엄청난 지진이 밀어닥친 칠레의 표정을 전한 AFP통신 기사의 제목이다. 특히 진앙 가까이에 위치해 지진의 직격탄을 맞은 칠레 제2의 도시 콘셉시온은 도시 전체가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

◇“자연의 거대한 힘이 덮쳤다”=TV 화면에 나타난 인구 67만명의 콘셉시온은 폐허 그 자체였다. 건물 잔해 탓에 도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진앙에서 115㎞ 떨어진 이곳에선 무너진 건물더미에서 사망자가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지진 당시 200명 이상이 머물러 있던 15층짜리 빌딩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도로가 갈라지는 참혹한 장면이 TV를 통해 계속 방영됐다. 이 건물에선 22명이 구조됐다.

특히 인체의 기능이 가장 떨어지는 시간대라 할 수 있는 새벽 3시34분부터 거의 2분 동안 지진이 계속되면서 주민들은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와야만 했다. 한 주민은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면서 악몽의 순간에 몸서리쳤다. 일부 주민은 벌써부터 약국과 무너진 곡물 창고에 들어가 약탈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콘셉시온 북동쪽에 위치한 치얀에서는 지진으로 교도소 건물이 파괴되면서 269명의 죄수가 탈출해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진앙에서 325㎞ 떨어진 수도 산티아고의 시민들도 공포에 사로잡힌 건 마찬가지다. 규모 8.8의 대지진 이후 5.0 이상의 여진만도 50여 차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가도로가 파괴되면서 시내의 일부 차량은 고가도로 위에 위험하게 매달려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지하철 운행도 전면 중단됐다. 산티아고 상당 지역에서 정전 상태가 계속되고 있으며 수돗물 공급이 끊겼다. 이에 따라 일부 주민은 칠흑 같은 거리에서 공포의 밤을 지새워야 했다. 인터넷 서비스도 거의 중단됐다. 말 그대로 도시 기능이 마비된 것과 진배없다.

산티아고 인근 퀼리큐라 지역에선 더운 한 여름에 식수 공급이 늦어지면서 주민들이 점차 폭력적으로 변하는 등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다고 dpa통신이 보도했다. 심지어 구호물자를 배급하는 트럭에 돌을 던지는 일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산티아고 시민 세바스티안(22)씨는 “내 인생 최악의 경험”이라고 울먹였다.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자연의 거대한 힘이 다시금 이 나라를 덮쳤다”고 한탄했다.

이번 지진으로 세계 1위 구리 생산국이자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강국 칠레의 경제도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됐다. 재난위험평가업체인 EQECAT는 이번 지진의 경제적 피해가 150억∼3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칠레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15% 규모다. EQECAT는 전체 피해 가운데 가옥 피해가 55~65%이며, 상업 및 산업 시설 피해가 각각 20~30%, 15~20%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또 산티아고 서쪽에 있는 발파라이소 주에서의 지진 피해가 전체의 25%쯤 될 것으로 EQECAT는 분석했다.

◇53개 태평양 연안 국가에 영향 미쳐=지진 여파로 발생한 쓰나미는 53개의 태평양 연안국으로 퍼져 나갔지만 큰 피해를 내진 않았다. 호주를 포함한 다른 남태평양 섬나라에선 아직까지 별다른 피해가 보고되지 않았다. 태평양쓰나미경보센터(PTWC)는 28일 오후 7시쯤 태평양 전역에 발령된 쓰나미 경보를 해제했다고 밝혔다. 쓰나미 경보가 내려졌던 미국 하와이에서도 별다른 피해 없이 경보가 해제됐다.

그러나 칠레 해안에서 700㎞ 떨어진 태평양 해상의 로빈슨 크루소 섬에 쓰나미가 덮쳐 5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실종됐다. 유적을 포함해 섬 약 20∼30%가 파괴됐다고 한다.

또 칠레 강진 수 시간 뒤 규모 6.1의 지진이 발생한 아르헨티나에선 8세 어린이와 70세 노인이 숨졌다고 현지 방송이 보도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