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왜?… 문화재급 경매 앞두고 논란

입력 2010-02-28 17:39


순종 회중시계·명성황후 한글서간문 출품

미술품 경매사인 K옥션이 오는 1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경매장에서 여는 올해 첫 경매에는 조선 마지막 임금인 순종의 회중시계와 순종의 어머니인 명성황후의 한글서간문이 나온다. 회중시계는 스위스의 고급 시계 브랜드인 바셰론 콘스탄틴에서 제작한 것으로 뒷면에 대한제국의 문장이었던 ‘이화문(李花文)’이 새겨져 있다. 경매 시작가는 5000만원.

K옥션은 “1926년 6월 10일 열린 순종의 장례식 사진 100여장을 담은 ‘어장의사진첩’(御葬儀寫眞帖)에 실린 부장품과 동일한 시계”라며 “대한제국 황실과 직접 관련된 인물이 경매에 내놓은 것으로 바셰론 콘스탄틴사에 문의해 1910년에 제작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어장의사진첩은 순종의 동생 의친왕의 손자인 이혜원씨가 2003년에 공개한 것이다.

또 명성황후가 친척 동생에게 보낸 친필 한글 편지 묶음도 출품됐다. 추정가는 5000만∼8000만원. 총 8통의 편지와 봉투 6장으로 구성된 한글서간문은 민영소에게 보낸 것으로 당시 구하기 힘들었던 시전지(詩箋紙-시나 편지 등을 쓰는 종이)에 기록돼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옥션 경매에서도 명성황후가 측근에게 보낸 한글 편지 10통이 담긴 서첩이 출품됐었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이들 유물이 경매에 나오는 것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먼저 시대상황은 다르지만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할 왕실 유물이 어떻게 개인 소유가 됐으며 경매에까지 나왔는가 하는 문제다. 국립고궁박물관 관계자는 “일제강점기에 왕실 유물 관리가 허술했던 탓에 어느 후손이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다가 경매에 내놓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경매에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K옥션 관계자는 “위탁자의 신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구한말 비운의 왕가가 몰락한 뒤 어렵게 살아온 후손이 경제적인 이유로 출품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에 나온 명성황후의 친필 편지와 지난해 출품된 명성황후의 서첩도 왕실 관련 인물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출품 이유는 마찬가지다.



이들 유물의 문화재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1932년 4월 29일, 폭탄 투척 거사를 위해 떠나기 앞서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이 맞바꾼 1910년대 스위스 월섬사 제작 회중시계는 순종의 유품과 비슷한 것으로 윤 의사의 회중시계는 보물 제568-3호(충의사 소장), 백범의 회중시계는 등록문화재 제441호(독립기념관)로 각각 지정됐다. 순종의 회중시계도 역사성과 희귀성으로 볼 때 보물급에 포함될 수 있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경매에 나온 유물을 문화재로 보존할 수는 없을까. 국공립박물관이 국고로 구입하는 방법이 있지만 경매에서 수 억원대까지 치솟을 경우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한 해 유물 구입비가 100억원도 안되기 때문에 경매를 통해 사들이기는 어렵고 소장자의 기증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털어놨다.

K옥션 측은 “문화재 가치가 있는 출품작은 공공박물관 등에서 낙찰받기도 한다”면서 “순종의 회중시계는 비슷한 작품이 여러 개 있지만 족보(기록)가 확실한 왕실 유품이라는 점에서 스위스 제작사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근대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자칫 해외로 빠져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