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권오승 (10) 암환자 위한 기도-수련회 사고 통해 신앙 고민
입력 2010-02-28 17:27
선데이 크리스천이던 내가 1997년 장로 직분을 받았다.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봉사나 교제는 전혀 않던 내가 장로까지 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자 안할 수 없었다. 순전히 자발적인 마음으로 하게 됐다.
그러나 장로가 되기 전까지 내 신앙은 좌충우돌이었다. 이전 구역장이 사업 때문에 미국으로 가면서 대리 구역장을 맡게 됐다. 우리 구역에 후두암 말기 환자가 한분 있었다. 전임 구역장은 매우 헌신적이어서 금요일 저녁마다 이 환자를 찾아가 철야기도를 했다. 하지만 나는 병문안을 가기도 어려웠다. 왜냐하면 당시 나는 ‘기적’을 믿지 않았다. 의학적으로 후두암 말기면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랐다.
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마침 담임목사님과 장로님, 성도님들이 그 환자를 심방하겠다고 했다. 잘됐다 싶어 나도 따라 나섰다. 나는 병실 뒷자리에 서서 조용히 묵상만 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환자 심방을 한 번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 다음 주 다시 용기를 내 혼자 병실을 찾았다. 그날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환자만 혼자 누워 있었다. 나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묵상기도를 드리고 투병을 잘하라고 한 뒤 일어났다.
이 때였다. 환자가 갑자기 내 손목을 잡더니 “구역장님, 기도 좀 해주세요”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눈앞이 깜깜했다. 그 때까지 소리를 내서 기도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구역장으로서 기도 요청을 뿌리칠 수도 없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남을 위해 소리를 내어 기도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을 나왔다. 거의 뛰쳐나왔다. 무슨 기도를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구역장으로 있을 때 한 번은 교회에서 큰 사고가 있었다. 전교인수련회 중에 여섯 살짜리 꼬마가 숨지는 사건이었다. 92년 경기도 용인 숙명여대 수련원에서였다. 그 꼬마는 우리 구역의 가족이었다. 부모님이 버거워 할 정도로 지적 호기심이 많았다. 저녁식사 시간이 됐는데 이 꼬마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아이가 갈 만한 곳을 찾았지만 수련회장 어디에도 없었다. 한 집사님이 강당의 빔 프로젝트에 이상한 물체가 걸려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달려가 보니 이 프로젝트의 전선에 아이가 감겨 있었다. 급히 내려 응급처치를 하고 병원으로 옮겼지만 아이는 숨을 거둔 뒤였다.
수련회를 서둘러 마무리하고, 가까운 병원에서 장례 준비에 들어갔다. 아이의 부모님은 물론이고 친가와 외가의 조부모님들을 비롯한 많은 가족과 친지들이 찾아와서 며칠 동안 함께 기도하고 슬픔을 나눴다.
그러나 우리는 수련회 장소에서 어떻게 그러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지,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는 말씀에 의지해 아이의 가족을 위로했다.
나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선한 뜻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생각했다. 그러면서 부족한 나를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게 됐다.
나는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 청년부의 부장을 거쳐 장로가 됐는데 장모님이 제일 기뻐하셨다. 누구보다 내가 장로 되길 원하셨다.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눈물이 앞을 가린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