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연아 피겨 여자싱글 金메달 확정 순간… 세계는 잠시 숨이 멎었다

입력 2010-02-26 18:37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 마지막 연기 과제인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이 끝나는 순간 금메달을 확신했다. 바로 뒤 순서인 일본의 아사다 마오가 어떤 연기를 하든 별로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김연아는 연기를 마친 뒤 ‘해냈다’는 뜻으로 두 팔을 들어올렸고, 곧이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울었다. 김연아는 지난해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처음 금메달을 딴 뒤 30여분 뒤 치러진 시상식에서 태극기를 바라보며 운 적은 있다. 하지만 경기를 끝내자마자 눈물을 흘린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그동안 짓눌렸던 금메달 부담감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브라이언 오서(49) 코치는 경기를 마치고 ‘키스 앤 크라이 존’(점수 발표를 기다리는 좌석)으로 들어오는 김연아를 가볍게 안아주며 “완벽했어(perfect)”라고 말했다. 김연아는 흐르는 눈물을 화장지로 닦았다.

전광판에 김연아의 프리스케이팅 점수 150.06점이 찍혔다. 피겨 여자싱글 역대 최고점이었다. 이틀 전 쇼트프로그램에서도 역대 최고점(78.50점)을 세운 김연아의 총점(228.56점) 역시 세계 신기록이었다.

퍼시픽 콜리시움 경기장내에서 ‘와우∼’하는 관중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다음 순서인 아사다가 아무리 연기를 잘한다 해도 ‘금메달은 김연아’라는 분위기였다.

김연아의 점수를 확인한 아사다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연기를 시작했다. 아사다는 연기 초반 본인의 주무기인 트리플 악셀을 2차례 모두 성공시키며 바짝 쫓아왔다. 관중석 일본 응원단의 함성도 커졌다.

그러나 아사다는 7번째 연기 과제인 트리플 플립과 이어지는 2회 연속 더블 루프 점프를 실수했다. 트리플 플립을 끝낸 뒤 중심을 잡지 못해 한 번 흔들렸다. 나머지 2개의 더블 루프는 잘 끝냈으나 바로 이어진 트리플 토루프에서 3바퀴를 돌지 못하고 1바퀴만 돌았다. 경직돼 보였다. 아사다 연기가 끝나자 일본 관중들은 일장기를 흔들며 박수를 보냈으나 표정은 어두웠다.

김연아는 본인의 금메달 사실을 선수 대기실에서 확인했다. 아사다, 조애니 로셰트(캐나다), 미라이 나가수(미국) 등 뒷 순서 선수들의 연기 장면을 선수 대기실 TV로 지켜봤다. 김연아는 마지막으로 출전한 미라이의 프리스케이팅 점수가 발표되고, 자신의 금메달이 확정되자 만세 동작을 해보였다.

김연아를 이기지 못해 금메달에서 멀어진 아사다는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일본 기자들과 눈물의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를 시작한 지 3분 정도 지나고, ‘일본의 마지막 금메달 희망이었는데 지금 기분이 어떠냐’는 일본 기자의 질문이 나오자 아사다의 큰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렀다.

김연아는 곧이어 진행된 플라워 세리머니에서 ‘골드 메달리스트, 올림픽 챔피언’이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호명과 함께 시상대에 올랐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금메달을 두 손으로 만져보기도 했다.

김연아는 애국가를 따라 불렀다. 애국가 3소절까지는 눈물을 참고 참았지만 마지막 4소절에서 끝내 눈물을 보였다. 김연아는 태극기를 두르고 링크를 돌았다. 김연아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밴쿠버=이용훈 기자 co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