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 선교사, 근대 한국 42년간의 기록 책으로 나와

입력 2010-02-26 18:04


“오늘은 한국의 위대한 날이다. 한국인들의 기쁨이 얼마나 이어질 수 있을까? 오후 2시, 중학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들이 일본의 한국 지배에 항거하는 시위를 벌였고, 거리로 나가 양손을 위로 올리고 모자를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하기 시작했다.”(1919년 3월 1일)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한국에서 살다간 미국인 여선교사 매티 윌콕스 노블(1872∼1956) 여사가 이 땅에서 보고 들은 것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글을 묶은 ‘노블일지 1892∼1934’(이마고)가 출간됐다. 감리교 선교사인 노블 여사는 스무 살에 남편 윌리엄 아서 노블과 함께 한국에 들어와 서울과 평양에서 42년간 살다가 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 대한 그의 첫인상은 이랬다. “제물포에 도착하니 긴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바닷가로 우리를 마중 나왔다. 한 한국인이 100㎏이 넘게 나가는 우리의 엄청나게 무거운 트렁크를 등에 지고 날랐다. 그들은 모든 것을 등에 져 나른다.”(1892년 10월 21일)

‘노블일지’에는 선교 활동에 관한 내용이 많지만 한국의 풍습과 사회상, 한국 근대사의 주요 사건들에 대한 생생한 목격담이 담겨 있다. “일본군의 한국 주둔이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벌써 여러 달 동안 매일매일 아무런 보상도 못 받고 거처를 잃는 가족들이 생겨나고 있고, 일본인들은 한국인들 앞에서 계속해서 거드럭거린다.”(1906년 4월 30일)

3·1 만세운동과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 행위들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도시 전역에 기쁨의 외침 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나는 긴 행렬 하나가 궁궐 담장의 모서리를 지나는 광경을 우리집 창문을 통해 볼 수 있었다.”(1919년 3월 1일)

“어제 저녁 일요일, 서울 서부의 몇몇 동네와 종로에서 동대문에 이르는 서울 시가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국의 독립을 외치는 데모가 있었다. 많은 사람이 경찰과 헌병들에 의해 베임을 당했고, 몇몇은 죽임을 당했다.”(1919년 3월 24일)

“요즘은 밤에 한국인이 거리를 걷기만 해도 경찰에게 매를 맞는다. (중략) 어젯밤 거리를 걷던 사람들 가운데 만세를 부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 명이 살해됐으며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1919년 3월 30일)

일지에는 예배당에 신자들을 모으고 총살한 뒤 불태운 ‘제암리 학살사건’(1919년 4월 15일), 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시작으로 이듬해 1월까지 이어진 만세시위, 덕수궁 화재사건(1904년 4월 15일), 일본의 경복궁 습격사건(1894년 7월 23일)에 대한 소회 등도 실려 있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