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보혈을 지나’ 작곡한 김도훈 목사 “日 청년 영혼을 깨우러 갑니다”
입력 2010-02-26 18:03
찬양 명곡 ‘보혈을 지나’를 만든 김도훈(37) 목사가 일본 젊은이들의 영혼을 깨우기 위해 25일 일본 도쿄로 떠났다. 김목사는 도쿄순복음교회 청년부를 맡는다. 24일 오후 여의도순복음교회 십자가탑 아래서 김 목사를 만났다. 설마했다. 스포츠형 머리에 무스를 바른 이 청년 목사가 ‘보혈을 지나’를 만들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무엇이 이 젊은 목사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을까. 그가 태어날 당시 부친은 서울의 큰 법랑회사 사장이었으나 그가 여섯 살 때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홀로 된 김 목사의 어머니는 건축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어린 남매를 키웠다. 아들은 어머니의 월급봉투를 훔쳐 오락실을 드나들며 거친 학창생활을 보냈다. 아버지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항이었다. 3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기적처럼 살아났다고 했다. 시한폭탄 같던 10대를 지켜준 것은 어머니의 신앙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겨우 철이 들었다.
뒤늦게 공부해 91년 대학(건국대)에 들어갔지만 마음을 잡을 수 없었다. 신입생 환영식 날 끝까지 술을 먹지 않는 모습을 본 한 여학생이 “당신이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네요?”라고 물었지만 대답을 못했다. 대신 그 답을 찾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솟아 나왔다.
학업을 중단하고 94년 한세대 신학부에 들어가 98년 졸업했다. 양복이 없어 졸업식에도 가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여동생이 한 달 치 월급을 털어 양복을 선물했다. 김 목사는 이 양복을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보혈을 지나’는 2003년에 기도하던 중 환상을 본 뒤 만들었다. 커다란 십자가 주변 하늘에서 주먹만한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것은 물방울이 아니었다. 핏방울이었다. 한 방울씩 떨어지다가 폭포처럼 흘렀다. 수많은 외로운 영혼들이 폭포수를 지나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고 있었다.
김 목사에게 2004년은 아주 특별한 해로 기억된다. 결혼을 앞두고 어머니(주영자 집사·66)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값진 3가지 선물을 받았다. 김 목사가 여섯 살 때부터 한 번도 쉬지 않은 십일조 봉투, 200만원이 든 은행통장과 네잎크로버를 붙인 400개의 청첩장이었다.
도배 일을 하느라 오른 손 엄지손가락을 못 쓰게 된 김 목사의 어머니는 아들의 결혼식 선물 마련을 위해 집 근처 용마산 공원 잔디밭에서 4개월간 네잎크로버 400개를 찾아낸 것이다.
4년 전 목사 안수를 받은 김 목사에게 꿈을 물었다. ‘천천천’이라고 했다. 60세가 될 때까지 1000곡을 만들고, 1000장의 워십 음반을 내며, 죽기 전에 1000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