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갓 졸업한 20대의 살아남기… 오현종 장편소설 ‘거룩한 속물들’
입력 2010-02-26 17:57
2010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 중 과연 속물 아닌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남보다 넓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몰고, 비싼 옷을 입고 싶은 열망과 그러지 못했을 때의 박탈감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의 천형인지도 모른다.
소설가 오현종(37)의 장편 ‘거룩한 속물들’(웅진 뿔)은 속물이 되지 않으면 낙오자가 돼 버리는 우리 사회의 속성을 담은 작품이다. 한마디로 21세기 대한민국 속물지형도다.
초점을 맞춘 대상은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에 발을 내딛는 20대다. ‘속물을 권하는 사회’에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기회도, 여유도 없이 세상으로 내몰리는 안쓰러운 20대.
서울 중상위권대 사회복지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기린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하면서도 돈을 펑펑 쓰는 친구들과 어울린다. 가방에 들어있는 화장품의 가격에 따라 인간 등급을 매기는 지은과 부잣집 딸로 명품 옷은 척척 사도 친구들에게 커피 한 잔 사는 법 없는 명이 그들이다. 기린은 이들과 어울리기 위해 A급 짝퉁 가방과 지갑을 샀고, 수입 생수병에 학교 정수기 물을 몰래 받아 들고 다닌다.
“나는 명과 지은을 따라다니다 신용불량자가 될 지경이었지만 실내장식이 예쁜 식당에서 그들과 마주 앉아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실 땐, 설명하기 어려운 만족감과 안도감을 느꼈다”(31쪽)
작가의 시선은 이들의 사회적 관계망을 훑어가며 사회 깊이 뿌리박힌 속물근성을 살핀다. SKY출신이지만 몇 년째 무직에, 재산이라고는 서울 외곽의 오래된 소형 아파트와 똥차뿐이지만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확신하는 기린의 아버지, 못생긴 얼굴에도 의사인 걸 내세워 기린을 함부로 대하는 남자친구 동운, 가난한 집안 출신이나 반반한 인물을 내세워 부잣집으로 시집 간 후 귀부인 흉내를 내는 사촌언니, 할아버지의 유산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명의 친척 등.
속물근성을 드러내기 위해 위악적으로 설정된 캐릭터지만, 이들의 모습은 실제 우리 주위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렵잖게 겹친다. 속물도, 속물이 되고 싶어 하는 이도 모두 자기만의 사정이 있음을 설명하는 작가의 서술 방식은 지금의 우리를 바라보는 작가의 애처로운 시선을 드러낸다.
“등장인물 중 완벽한 속물은 없어요. 다들 욕망의 희생자들이죠. 이들한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새 옷, 새 차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외롭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작가는 “사회를 지배하는 속물성 때문에 자신을 잊어버리고 꿈 없이 살아가는 20대를 보며,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사회학도로서 작가가 가지고 있던 고민의 깊이가 책갈피마다 새겨져 있다. 제목은 김수영의 산문 ‘이 거룩한 속물들’에서 따왔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