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랑자들의 목회자 외침’ 설립 100주년 구세군사관학교를 찾다

입력 2010-02-26 08:18

투철한 소명의식 2년간 혹독한 훈련

낮은 곳 향한 철저한 ‘혈화사관’ 다짐


“이 시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주님의 혈화사관이 되겠습니다.”

지난 20일 2년의 훈련을 마치고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구세군사관학교 교정을 나서는 23명의 졸업생들. 이들의 얼굴에선 150여 년 전 부랑아들의 목회자가 되겠다며 영국 감리교회를 박차고 나갔던 구세군 창설자 윌리엄 부스의 뜨거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구세군은 용어에서부터 다른 개신교단과는 구별된다. 졸업생들이 고백한 혈화(血火)사관이란 말은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의 불에 휩싸인 철저한 헌신의 자세를 뜻한다. 사관은 목사의 군사적 표현이다. 사관학교를 졸업하면 사관(소위)이 된다. 그래서 구세군 사관학교 졸업식을 임관식이라고 부른다. 5년간 사관을 하면 정의(중위∼대위), 임관하 지 15년이 되면 참령(소령)이 된다. 참령 위엔 정령(대령)이 있다. 타교단의 총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령관은 정령 이상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사령관 위엔 부장(장성)이 있다. 현재 전 세계를 4개의 대륙으로 나눠 각 대륙별 부장이 관할하고 있다. 그리고 부장들을 관할하는 참모총장, 그 위에 최고 계급의 대장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영국인들이다. 국내 인사 중엔 아직 사령관까지만 배출됐다.

구세군사관학교는 올해로 설립 100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졸업 기수는 이번이 83기다. 생략된 17의 숫자 속엔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이 그대로 담겨 있다. 바로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이다. 신사참배와 공산주의를 격렬히 반대하는 바람에 학교가 폐교되거나 폐허, 또는 순교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1700명의 사관이 배출됐다.

사관학교 입학의 최우선 자격은 분명한 소명의식이다. 사역이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다. 그렇다고 투철한 소명의식만으로 입학자격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1년간 지역 구세군교회에서 사역하며 반드시 검증절차를 밟아야만 한다. 담임사관의 추천을 거쳐 이후 사관학교의 서류심사와 면접시험을 거쳐 최종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

사관학교 교육과정 역시 학생들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2년 동안 학생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다. 하루 일과는 5시 30분 기상, 6시 경건회, 6시 30분 아침운동, 6시 50분 성경통독, 7시 20분 청소, 7시 40분 아침식사로 빡빡하게 짜여 있다. 오전 9시 강의가 시작돼 오후 5시에 끝나면 5시 30분 저녁식사, 그리고 8시까지 달콤한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10시까지는 자율학습, 10시 반까지 개인 묵상, 11시엔 소등을 한다.

강의는 구세군 신학, 성서신학, 조직신학 등 일반 신학교와 비슷하지만 실천신학을 강조한다는 점이 다르다. 수요일엔 장애인이나 교도소 등 시설 봉사, 금요일과 주말엔 지역 전도를 나간다. 아침 경건회 역시 인도와 설교를 학생들이 전부 맡는다. 거기다 여름 두 달간은 지역 교회 봉사, 12월 한 달은 자선냄비 봉사로 쉴 틈이 없다. 사람들은 따뜻한 시선으로 감상하지만 사실 자선냄비 봉사 기간이 1년 중 가장 힘든 기간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여름 1주일, 겨울 3주가 방학의 전부다.

‘부부 공동사역’을 원칙으로 하는 구세군의 특성상 사관학교는 부부 학생이 다수를 이룬다. 하지만 부부가 학기 중 임신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독신으로 입학하더라도 결혼 대상은 반드시 사역자여야만 한다.

너무 엄격한 규정 아니냐는 질문에 구세군사관학교 교육교관 조진호(49) 교수는 “그래도 지금은 학기 중 결혼도 허용할 만큼 예전에 비해서 훨씬 느슨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사관학교는 타 신학교와는 달리 목회자 훈련학교라고 보면 된다”며 “고학력 소지자도 무조건 이 과정을 거쳐야만 구세군 사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매년 입학하는 구세군 사관학교 학생의 약 40%가 석·박사 학위 소지자다.

화려한 제복의 구세군 사관은 하지만 생활비(월급)는 초라하기만 하다. 임관 후 140∼150만원, 10년 이상 사역해도 200만원 정도가 고작이다. 부부 사관의 경우도 한 사람 몫만 받는다. 자녀 수당이 별도로 있긴 하지만 이마저도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끊긴다. 전부 구세군 생활비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이렇다 보니 청빈이 구호가 아닌 생활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구세군 사관들의 설명이다.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