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오종석] 中 바링허우의 명암
입력 2010-02-25 21:13
중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세대가 ‘바링허우(80後)’다.
1980년대 태어났다는 뜻으로 덩샤오핑(鄧小平)이 주도한 개혁개방 시대 ‘한 가구 한 자녀’ 정책에 의해 태어난 세대다. 현재 21∼30세 연령대인 이들은 약 2억4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과거 세대와 달리 물질적 풍요 속에 부모의 절대적 사랑을 받은 소위 ‘샤오황디(小皇帝)’나 ‘샤오궁주(小公主)’다. 나약하고 이기적이며, 반항적이라는 등 주로 부정적 이미지가 많았다.
이런 바링허우가 중국의 미래를 책임지는 핵심 세대가 되고 있다. 이들은 본격적인 인터넷 세대로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각 분야에서도 이들의 역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산둥(山東)성 신타이(新泰)시 인사에선 부국장급 간부 7명 중 6명이 바링허우였다. 주요 정치 세력으로의 부상도 멀지 않았다. 사회적으로는 이들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 관리들의 부정부패, 부동산 폭등, 인터넷 통제 등 문제에 대해 이들은 비난하고 항의할 줄 안다. 경제적으로도 이들은 가장 중요한 존재다. 중국 경제의 중요한 핵심 축인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근로자) 2억3000여만명 중 절반 정도가 바링허우다. 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내수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성장 방식에서도 이들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강력한 소비 성향 등을 바탕으로 향후 중국 경제성장을 견인할 세대이기 때문이다.
한때 바링허우는 ‘행복한 세대’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에는 가장 힘든 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으면 취업 전쟁을 벌여야 하고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면 주택 구입 등 생활과의 전쟁을 벌여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바링허우들은 스스로를 ‘노예 세대’로까지 부른다. 카드로 생활하는 카드의 노예, 집 장만을 위해 대출에 허덕이는 집의 노예(房奴), 차의 노예(車奴), 결혼 부담에 시달리는 결혼의 노예(婚奴) 등은 이미 유행어가 됐다.
중국 사회에서 ‘워쥐(蝸居)’와 ‘이쭈(蟻族)’가 최대 유행어가 된 것도 이를 반영한다. 가장 인기를 끌었던 도서명이자 드라마의 제목인 워쥐는 달팽이 집이란 뜻으로 도시에서 작은 집에 사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쭈도 개미족이란 뜻으로 대도시 빈민가 작은 집에 모여 살고 쉴 새 없이 이사를 다니는 서민을 풍자한 말이다. 실제로 대도시 빈민가에 거주하는 바링허우 개미족은 1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저우일보가 최근 웹 포털 신랑(新浪) 등과 공동으로 전국 3313명의 바링허우를 대상으로 인터넷 설문조사를 한 결과 52.6%가 “1970년대나 90년대에 태어난 세대보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심하며 행복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인민일보는 한 논평에서 “바링허우의 마음 속 악마(心魔)는 2가지 방면”이라며 “학교에서는 취업문제, 취업 후에는 주택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가 가장 골머리를 앓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계층도 바링허우다. 앞으로 중국을 이끌어갈 주도세력인 이들이 방치될 경우 자칫 사회 불안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상대적으로 교육수준이 높은 이들은 주택난 등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될 경우 자칫 사회 저항세력이 될 가능성도 있다. 당국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문제 등에 대해 강도 높은 규제를 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후베이(湖北)대학 장즈민(張智敏) 교수는 “바링허우가 이성적으로 부를 쌓고 취업을 하고, 인생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사회가 지원을 아끼지 않을 때 비로소 이들이 각종 유혹 가운데에서 제대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에서 바링허우들을 만나면 다양한 표정을 읽을 수 있다. 나약하고 이기적인 표정, 강인하면서도 자신감과 책임감이 넘치는 표정, 지친 노예 같은 표정, 현실에 반항하는 표정 등등. 이들 바링허우는 중국의 동력이자 미래다. 하지만 이들의 표정이 어떤 쪽으로 더 많이 굳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베이징=오종석 특파원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