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시련의 임자도
입력 2010-02-25 19:16
서해의 외딴섬 임자도가 초상집 분위기라고 한다. 1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 농협 조합장 선거 과정에서 출마자와 조합원 사이에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나 대규모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주민 3700여명 가운데 경찰 조사 대상이 1000명이 넘으니 절로 탄식이 나올 만하다.
임자도는 들깨(荏子)가 많이 난다고, 혹은 깨를 뿌린 것처럼 많은 섬을 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정작 유명한 것은 깨알보다 가는 모래다. 섬 전체가 모래언덕이어서 바람이 한번 세차게 몰아치면 온 산야가 모래가루에 덮인다.
이 모래는 전장포 새우를 길러내는 효자이다. 국내 어획량의 60%에 전국적 명성을 얻고 있는 전장포의 백화새우는 하얀 모래 속에서 고운 몸매를 만들어 낸다. 새우잡이 철에 임자도 앞바다에 깨알처럼 박혀있는 선단은 평화로운 풍경이면서 치열한 어로(漁撈)의 현장이다. 1992년 홍기선 감독이 만든 영화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에 새우잡이 어부들의 고단한 삶이 나온다.
섬 서북쪽에 자리한 대광리 해수욕장은 숨겨진 보석이다. 길이가 장장 12㎞에 이르고 폭은 200m가 넘는다. 서해이면서도 동해에 견줄 만한 청정해안을 자랑한다. 모래사장 뒤쪽에서 모진 해풍을 맞으며 피고 지는 해당화의 군락 또한 일품이다. 몇 곳에 남아 물레를 돌리는 재래식 천일염전도 구경거리다.
이런 천혜의 섬이 제대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접근성 때문이었다. 목포와 임자도를 오가는 여객선은 크고 작은 섬을 꼬불꼬불 도니 자그마치 6시간이 걸렸다. 배편은 하루 3∼4회에 그쳤고 기상이 나쁘면 수시로 끊기니 여행지로는 최악이었다. 여기에다 1968년 27명의 구속자를 낸 ‘임자도 간첩단 사건’이 음울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근래 들어서는 인근 지도(智島)와 무안군 해제(海際)를 잇는 연륙교가 세워지고, 지도에서 임자도를 건너는 바다에 철부선(차를 싣고 탈 수 있는 배)이 운항하면서 여행객에게 사랑 받는 국민관광지로 거듭나는 중이다.
농협 사건은 선거환경의 변화에 무신경한 시골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경상북도 산간지방에서 군수 선거를 여러 번 하는 것과 비슷하다. 시골 인심과 법치의 간격이 크다는 이야기다. 달라진 선거제도에 대한 홍보가 절실하다.
임자도 사람들은 하루빨리 상처를 딛고 슬로건처럼 ‘아름답고 풍요로운’ 모습을 되찾아야겠다. 한 때 섬의 삼막산 정상에서 군역(軍役)을 치른 인연이 있기에 섬의 무탈과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 더욱 간절하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