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주은] 사랑의 가상체험

입력 2010-02-25 19:09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이륙할 예정입니다.” 창가를 바라보며 안정감을 만끽할 수 있는 기차에 비하면 비행기는 탈 때마다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내리고 탈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있는 완행기차가 인생에 비유된다면, 한번 이륙해서는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끝까지 떠있어야 하는 비행기는 사랑에 비유될 수 있을 것 같다.



공항에서 짐을 부치면서 수하물 라인에 실려 사라져가는 가방을 보고서는 ‘혹시 내 짐만 딴 곳으로 잘못 실려가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잠시 했다. 처음 사랑의 감정을 맞게 되면 ‘내 마음이 잘못된 상대에게 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음식을 실은 수레가 통로를 따라 내려오면, 별로 배고프지도 않으면서 소고기스튜를 먹을지 비빔밥을 먹을지 막연한 기대를 하며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린다. 이런 흐뭇한 기분은 주로 사랑의 초기 단계에 발생한다. 고대 그리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사랑하는 두 사람은 원래 하나였다가 떨어져나간 ‘반쪽’이기 때문에 다시 하나가 되려고 자꾸만 좋은 느낌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반쪽들은 본래 두 얼굴이 반대편으로 바라보도록 붙어있는 동체였는데, 각각 자기 방향만을 고집하자 애초에 신이 둘로 갈라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반쪽들은 함께 있는 것을 갈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혼자 누리는 자유를 본능적으로 꿈꾼다. 또한 상대방의 자유는 서로 친밀해졌다는 이유로 마치 허가장이라도 가진 듯 침해하려 한다. 비행기 안의 꼭 끼는 자리에서 숨 막히도록 답답해지는 때가 있는데, 그때가 바로 사랑과 자유의 갈등 단계에 해당하지 않을까. 눈치도 없이 또 한 번 음식냄새를 풍기며 기내식 수레가 등장한다. 이번엔 흐뭇한 기대는커녕 약간의 구역질이 밀려올 뿐이다.

서로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랑이란 이론적으로는 멋있어 보여도 실제로는 서글픈 일일지도 모른다. 혹시 사랑의 알맹이는 차갑게 식어버리고 껍질만 남아 미지근한 우정을 지속하게 된 관계라야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상대가 옆방에서 자고 있어도 깨우지 않고, 아니 깨울 필요도 없고, 마음 둘 곳 없는 허전한 감정을 달래려고 새벽이 되도록 집중도 되지 않는 TV채널을 돌리는 관계 말이다.

어느덧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진동이 느껴지면서 비행기가 착륙음을 알린다. “저희 승무원들은 곧 여러분을 다시 모시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고공비행이 끝남과 동시에 사랑에 대한 가상체험도 끝났다. 드디어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핸드폰을 켜자 “띠리리릭∼” 하는 소리가 연속 울리며 갇혀 있던 문자가 줄줄이 뜬다. 읽어보니 모두 현실에서 바로 수행해야 할 미션들이다. 아쉬운 듯 하늘을 본다. 나는 내렸지만 사랑은 아직도 어딘가를 날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자신의 사랑만큼은 추락하지 않고 공상의 영역에 남아 있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은(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