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합헌 결정] 겉은 존치 속은 폐지에 무게… 혼란 우려한 고육지책
입력 2010-02-25 21:48
헌법재판소가 13년여 만에 또다시 사형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무게 중심은 사형제 존치보다 폐지 쪽에 놓여 있다. 겉으로는 합헌 의견이 많은 5대 4 합헌 결정이지만 속을 뜯어보면 재판관 6명이 사형제는 어떤 식으로든 개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법적 안정성 고려=합헌의견을 낸 재판관 5명은 단서 조항에 사형을 언급한 헌법 110조 4항(비상계엄 하의 군사재판)의 규정을 “우리 헌법이 사형제를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사형제를 유지해 도모할 수 있는 범죄예방, 국민 생명보호, 정의실현 등의 공익이 극악한 범죄자의 생명권 박탈이라는 사익보다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도 덧붙였다.
이강국 소장은 합헌 보충의견을 내고 “생명권이 최상위 기본권이라는 점만을 내세워 실정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사형제를 가볍게 위헌이라고 부정하는 것은 헌법 해석의 범위를 벗어나 헌법의 개정이나 변질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위헌 결정은 현행 형법제도의 근간을 뜯어고치는 작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위헌 결정을 내렸을 때 이미 형이 집행된 수백명의 피고인에 대한 재심 및 보상 문제가 현실적인 걸림돌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크다.
◇사형제 폐지에는 공감=합헌 의견 중 “사형은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고 할 생명권에 대한 박탈을 의미하므로 형벌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정도를 넘는 과도한 것으로 평가된다면 위헌적인 형벌”이라는 판단은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향후 사형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따라 위헌 여부가 달리 판단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으로 풀이된다.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 중 민형기 송두환 재판관이 보충의견을 내고 제도 개선을 촉구한 것에도 눈길이 쏠린다. 민 재판관은 “동서고금을 통해 사형제가 악용된 역사적 경험을 고려해 국민적 여론과 시대 상황의 변천을 반영해 점진적으로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송 재판관은 “사형이 선택될 수 있는 범죄의 종류를 반인륜적인 범죄로 한정해야 한다”며 “사형제도의 폐지 또는 유지 문제는 헌재의 위헌심판보다는 국민의 선택과 결단을 통해 입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논의는 국회로=위헌의견을 낸 재판관 4명에 합헌의견을 냈음에도 제도 개선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 2명을 더해 모두 6명이 현 사형제에 비판적 의견을 나타냈다. 공식적으로는 합헌을 결정하면서도 사형제 존폐 논의의 주인공은 결국 국회가 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따라서 사형제 폐지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형제 옹호론자들은 매년 1000건 이상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있어 사형제 폐지를 검토할 상황 변화가 없고, 범죄예방 등에서 사형제를 대신할 수단이 없다는 견해를 굽히지 않고 있다. 사형제 폐지론자들은 90여개국이 사형제를 완전 폐지하는 등 반문명적인 형벌이라는 점이 분명하고, 우리나라 역시 이를 수용할 여건을 갖췄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흉악범을 영구 격리하는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는 대안을 내놓고 있다.
이미 국회에 사형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복수의 형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법무부도 올 하반기 제출을 목표로 형법 개정안을 다듬고 있다. 법무부는 사형제 존치 쪽으로 가닥을 잡고 법안을 만들고 있어 향후 입법과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