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범-이상화 금메달에 숨은 이야기… ‘아이스링크의 아저씨’ 전동철

입력 2010-02-25 18:01


“어휴 ∼ 제가 메달?”… “거봐, 땄잖아”

“아저씨! 돗자리 깔고 길거리로 나가셔도 되겠어요.”

들뜬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도 느껴졌다. 모태범(21·한국체대)이었다. 지난 16일 오후 1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딴 지 2시간 만이다.

“거봐, 내가 너 메달 딸 거라고 했잖아.” 스포츠용품 제작 업체 INS102 전동철(47) 이사의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졌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인 전씨는 1997년 초등학교 3학년인 모태범을 스케이팅 유망주로 발굴해냈다. 이듬해에는 서울과 강원도 춘천의 경기장을 오가며 모태범의 성장을 지켜봤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금메달리스트 이상화(21·한국체대)와는 후원으로 인연을 맺은 지 10년이 넘었다. 모태범과 이상화의 아저씨. 그에게서 두 금메달리스트의 이야기를 들었다.

금메달로 돌아온 모태범의 악몽

지난 2일 서울 공릉동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선수단 출정식. 전씨가 모태범에게 다가갔다. “(이)규혁이와 (이)강석이도 잘하지만 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잖아. 다크호스니까 하던 대로만 하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 그리고 2주일 만에 그 말은 현실이 됐다.

“태범이가 메달을 따자마자 전화해서는 꿈 이야기를 늘어놨어요. 징조가 안 좋았대요.”

-어떤 내용이었나요?

“500m 결선 전날 규혁이가 금메달을, 본인은 5등을 하는 꿈을 꿨답니다. 친형 같은 선배가 우승한 건 좋은데 자기가 메달을 못 따니까 마음에 걸렸나 봐요.”

-당일 표정은 밝아 보이던데요.

“경기장에서 결선 1차 시기 조 편성 결과(총 20조 중 13조)를 봤는데 예감이 좋더래요. 네덜란드의 얀 스미켄스(23·월드컵 랭킹 9위)가 파트너였는데 그 친구가 300m쯤부터 스퍼트가 좋거든요. 태범이는 중·후반이 약한데 스미켄스의 경기 운영을 따라가면 보완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모태범은 결선 1차 시기에서 2위에 깜짝 랭크된 데 이어 2차 시기에서도 역주, 1·2차 합계 전체 1위를 차지해 한국 빙상의 새 역사를 썼다.

“보통 그런 꿈을 꾸면 위축되게 마련인데, 이 녀석은 곧 흘려버렸어요. 자기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부담감을 느끼지 않은 거죠. 타고난 강심장이에요.”

전씨가 그를 처음 본 것은 97년 서울 어린이대공원 아이스링크에서였다. 서울 은석초등학교 3학년생들이 스케이트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넘어지기 바쁜 다른 애들 사이에서 모태범은 ‘겅중겅중’ 뛰어다녔다. “저 녀석 좀 봐라.” 구경꾼들도 웅성댔다.

전씨는 모태범의 어머니 정연화(50)씨에게 “운동을 시켜보자”며 박노순 당시 어린이대공원 아이스링크 코치(현 성남시인라인롤러연맹 코치)를 소개해줬다. 이듬해 춘천에서 열린 회장기 전국 초등학교 빙상경기대회에는 박 코치 대신 전씨가 직접 데리고 경기에 참여했다.

“경기가 코앞인데도 차만 타면 10분도 안돼 잠에 곯아떨어지더라고요. 그 어린 애가 무슨 배짱이 그리 센지.” 경기 결과는 좋지 않았다. 모태범은 “허벅지가 아프다”고 했다. 병원에서 골반 부상이 발견됐다. 대회를 앞두고 훈련 강도를 높이다 오른쪽 골반이 뒤틀린 것이다. 어머니 정씨는 “그때 이후 틈날 때마다 골반 교정을 받으며 훈련해왔다”고 말했다.

5학년 때 모태범이 일취월장하자 전씨와 박 코치는 당시 태릉선수촌에 있던 전풍성 코치에게 소개시켰다. 처음으로 전문 개인 코치를 갖게 됐다. 이후 9년간 전 코치의 지도 아래 2007년 토리노 동계유니버시아드 500m 동메달을 따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전씨는 “태범이는 밥만 먹으면 운동을 한다. 이번 성과는 이런 성실함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했다.

장미란의 금메달을 건 이상화

동계올림픽 선수단 출정식 때 이상화의 목엔 이상한 메달이 하나 걸려 있었다. 2008년 고양 아시아클럽 역도선수권대회에서 장미란 선수가 받은 금메달의 샘플이었다. 실제 금메달을 제작하기 전에 만든 시험용 모조품을 전씨가 역도선수 출신 동료로부터 구해와 “장미란의 기를 이어받으라”며 걸어줬다.

“아유 아저씨, 제가 어떻게 메달을 따요”라며 손사래를 쳤던 이상화는 지난 17일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시상대 제일 꼭대기에 섰다.

“상화는 메달 색깔이 문제였지 따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생각했어요. 허벅지가 얼마나 두꺼운지 아세요? 자그마치 23인치 반이에요. 여자 연예인 허리만하고, 보통 여자 선수(22인치)보다도 두꺼워요.”

허벅지뿐 아니라 이상화의 팔뚝 둘레는 24㎝(일반인 평균 22㎝)가 넘는다. 고강도 훈련으로 만들어진 신체조건이다.

이상화는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꾼 은석초등학교 5학년 때 전씨와 인연을 맺었다. 부모 사업이 여의치 않아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때다.

‘클랩 스케이트(날의 뒷부분이 신발에서 분리되는 스케이트)’가 문제였다. 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선 보인 클랩 스케이트는 한 벌 가격이 90만원이나 됐다. 모태범과 함께 이상화를 가르치던 전풍성 코치가 전씨에게 도움을 요청해와 이를 지원해준 것을 계기로 ‘아저씨’가 됐다. 이상화는 전씨에게 ‘오예 1촌!’이라는 싸이월드 1촌명도 지어줬다.

“사진 찍을 때 V자 그리는 거 보면 애 같은데, 남자 선수도 힘들어하는 훈련까지 견디는 걸 보면 또 굉장한 뚝심이 있어요. 상화의 허벅지는 운동선수에겐 영광이죠. 그 덕에 금메달을 걸었잖아요.”

남양주=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