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앞으로 97일… ‘박상훈 & 손낙구’ 선거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입력 2010-02-25 17:55
한국의 선거를 지배해온 유력한 프레임이 있었다. 지역이나 이념, 세대 등이 그것이다. 몇 가지 법칙도 있었다. 도시보다 지방이 투표율이 높다는 ‘촌고도저(村高都低)’, 도시 사람들은 야당을 많이 찍는다는 ‘여촌야도(與村野都)’가 대표적이다.
이런 설명은 2010년에도 맞는가. 근래 치러진 몇 차례 선거는 선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요구한다.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에 표가 집중되는가 하면, 지역주의 구도도 예전 같지 않다. 오는 6월 2일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보여주는 두 가지 이야기를 소개한다.
“한나라당은 수도권 정당”
“2000년 4월의 선거(제16대 총선) 직전인 3월 20일 전후에 조사, 공개된 한국갤럽의 의식조사 자료는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그것은 부산·경남 지역 거주 유권자 중 호남에 원적지를 둔 사람의 응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에 대한 호남 출신 유권자의 지지 비중은 55대 45로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선호가 강하게 나타났다.”(111쪽)
지역주의는 여전히 강고한가? 그래서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슬로건은 여전히 유효한가? 박상훈씨가 집필한 ‘만들어진 현실’은 한국 정치에서 상식처럼 통용되는 지역주의를 의심한다.
지역주의라는 이데올로기
박씨는 “정당과 지역의 결속은 지속적이지도, 안정적이지도, 공고하지도 않다”며 “DJ가 집권한 다음에는 부산에 사는 호남 출신 유권자도 더는 민주당 안 찍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로 이어진 10년의 민주 정부는 호남의 선택이 만들었다”며 “그것으로 ‘반호남 지역주의’는 더 이상 한국 정치가 해결해야 할 중심 문제의 지위에서 벗어났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정치의 갈등과 대립이 지역주의에 의해 비롯되고, 정당은 이 지역주의를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보고, 유권자는 이들에 의해 이용당해 지역주의 투표를 한다는 주장이 그간 별 의심 없이 개진돼 왔다. ‘지역주의 망국론’이다.
하지만 박씨는 한국 정치의 근본 문제를 지역주의로 과도하게 몰아가는 것 아니냐고 따진다. 그는 한국 정당들을 지역주의 정당으로 규정하는 태도에도 반대한다.
“한나라당의 의석 절반은 수도권에 있다는 걸 사람들이 못 보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개발 정책을 통해 수도권에서 점점 더 강세를 띠고 있어요. 오히려 수도권 정당이라고 보는 게 맞죠. 또 중상층 이익을 대변하고 보수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불러야 옳아요. 그래야 생산적 얘기가 시작됩니다.”
그는 세상에서 지역 간 차이가 가장 적은 나라가 한국이라고 말한다. 인종 언어 문화 종교적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적 격차 역시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지역주의의 역사 또한 그리 길지 않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 등장했고, 87년 민주화 이후 지배적 담론이 됐다. 박씨는 지역주의가 DJ·YS와 연관돼 불린 점, 그리고 선거 시기에 집중 거론됐다는 점 등을 꼽으며 “지역주의는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정당이다
그렇다면 선거 때마다 드러나는 지역 간 정당 득표 편차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박씨는 먼저 “선거에서 표는 지역적으로 균등할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대개의 경우 지역적으로 표가 균등하지 않은 게 정상입니다. 표의 편차를 지역주의 때문으로 설명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 경우 표의 편차를 낳는 실제 원인, 이를테면 불평등이나 불균등 문제, 고용 문제, 노동 문제, 시민적 권리 약화 등을 감추는 결과가 됩니다.”
표의 지역적 편차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외국 이론을 끌어온다. ‘표가 지리적으로 큰 편차가 생기는 것은 정당 체제의 이념적 범위가 협소할 때 나타나는 일종의 부수현상일 뿐이다.’ 현대 정당이론의 완성자라고 할 수 있는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의 이론이다. 박씨는 “정당 간 정책적 이념적 차이가 구분되지 않을 때 유권자가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가지려는 부가적 정보로 지역주의를 수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정당 간 차이가 분명해질 때 표의 지역적 응집성은 약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문제는 정당이다. 박씨는 “지역 간 불균등 문제를 해결한다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비례대표를 늘리는 게 지역주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며 “지역주의 자체를 문제로 삼는 순간 실제의 정치 이슈가 변형되거나 외면되는 결과를 빚는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역주의 극복 노력에 대해서도 이렇게 평했다.
“마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세종시나 대연정 같은 무모한 정책이 나온 것입니다. 집권 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지역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사율 높아 투표율 낮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서울) 양천구 목6동은 동네 선거권자의 4분의 3이 투표에 참여했는가 하면, 강남구 논현1동은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투표를 포기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송파구 잠실7동은 3분의 2가 투표했는가 하면, 강남구 논현1동은 3분의 2 이상이 투표를 포기했다. 심지어 강남구 안에서도 대치1동과 2동은 선거권자의 61%와 62%가 투표했으나, 논현1동과 역삼1동은 각 33%밖에 투표하지 않았다.”(57쪽)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걸까? 같은 서울, 그리고 같은 구(區) 안에서조차 동네별로 투표율이 현격하게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1600쪽이 넘는 손낙구씨의 책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손씨가 찾아낸 원인은 부동산이다.
주택 소유와 투표율은 정비례할까?
“집 가진 사람들이 많은 동네에서는 투표율이 높고, 집 못 가진 사람들이 많은 동네에서는 투표율이 낮습니다. 이것은 경상도에서도 일치하고, 서울 강남에서도 일치합니다. 투표율과 집은 정비례 관계를 이룹니다. 여기서 생겨나는 문제는 정치가 (소수의) 부유층을 과잉 대표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손씨의 결론이다. 그는 이 결론을 얻어내기 위해 서울시 522개, 경기도 524개, 인천시 140개 등 수도권 1186개 동네를 분석했다. 통계청의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와 최근 7년간(2002∼2008년) 치른 네 차례의 선거 자료를 맞춰가며 꼬박 1년을 매달렸다.
2004년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를 보자. 잠실7동, 잠실5동(송파구) 등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10개 동네는 가구 중 84%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반면 논현1동, 역삼1동(강남구) 등 투표율이 가장 낮은 10개 동네에 사는 사람은 가구 기준으로 74%가 무주택자다<서울지도 그래픽 참조>. 또 주택 소유 가구 비중을 기준으로 서울 동네를 5분위로 나눌 경우, 주택 소유자가 가장 적은 1분위(하위 20%) 104개 동네의 투표율이 가장 낮았으며, 주택 소유자가 가장 많은 5분위(상위 20%) 104개 동네의 투표율이 가장 높았다.
동네의 투표율은 주택 소유자 비율과 놀라울 정도로 정비례했다. 아울러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많은 동네는 투표율이 높고, 단독·연립·다세대주택 등 비아파트 거주자가 많은 동네는 투표율이 적었다. 손씨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간다. 부동산 소유 여부가 정당별 득표율에도 영향을 미칠까?
“두 차례 선거 모두에서 투표를 많이 한 동네로 갈수록 한나라당 득표율이 올라가고, 반대의 경우 당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득표율이 올라갔습니다.”
손씨는 “자신이 가진 재산 정도에 따라 뚜렷하게 계층 투표를 하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며 “수도권에 집을 한 채 또는 그 이상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갖는 정치적 의미는 엄청나게 크다”고 말했다.
셋방살이도 힘든데 무슨 투표
무주택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투표율이 낮은 이유는 뭘까? 손씨는 이사율에 주목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수도권에 사는 사람 3분의 2가 평균 5년에 한 번씩 이사한다. 특히 수도권 인구의 35%, 셋방 가구의 54%는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닌다.
“2년에 한 번씩 떠돌며 사는 것 자체가 고역이지만, 투표 참여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런 조건에서 현재 살고 있는 동네는 ‘우리 동네’가 아니라 곧 떠나야 할 곳일 뿐이다… 이런 곳에서 투표율이 오르기는 어렵다.”(21쪽)
손씨는 2008년 18대 총선을 휩쓴 뉴타운 얘기를 꺼냈다.
“지방선거나 총선의 경우, 지역개발 이슈가 많습니다. 그런데 집 없는 사람들은 자기 집이 아니니까 그런 얘기에 관심이 없어요. 그 동네에 집 갖고 있는 사람들은 예민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집 있는 사람들이 투표장에 적극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손씨는 “이사율이 높다는 게 정치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며 “거주의 안정성이 실현되지 않으면 정치의 정상화가 쉽지 않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투표를 포기하는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안내할 수 있는 정치활동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가난한 동네에서 투표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치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실제로 보여줘야 투표에 관심을 보일 것입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