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권오승 (9) 독일 유학 중 ‘아시아 경제공동체’ 꿈 꿔

입력 2010-02-25 17:21


경제법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신 분은 대학원 지도교수 황적인(黃迪仁) 교수님이었다. 1977년 초 경제법 교과서를 함께 집필하자고 하셨다. 1년 이상의 준비를 거쳐 78년 황 교수님과 공저로 경제법 교과서(법문사)를 출판했다. 국내 최초의 경제법 교과서였다. 88년에는 이를 전면 개정, 나의 단독 명의로 출판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경제법에 관한 대표적인 교과서로 자리 잡았다. 2009년에는 ‘한국경제법(韓國經濟法)’이란 이름으로 중국에서 번역 출판됐다.

경제법의 체계적인 연구는 84년 독일로 유학 가 프리츠 리트너(Fritz Rittner) 교수를 만난 뒤부터다. 리트너 교수는 경제법 분야의 세계적인 대가다. 당시만 해도 경제법과 같이 새로운 분야는 국내에서 제대로 연구하기가 어려웠다. 외국유학이 필요했고, 경제법이 발달한 독일을 선택했다. 83년 독일 훔볼트재단의 지원으로 86년 7월까지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경제법연구소에서 리트너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첫 해에는 리트너 교수의 모든 강의와 세미나를 빠짐없이 참가했다. 책과 논문도 모두 읽었다. 그러나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경제법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다음해부터 리트너 교수와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1시간 동안 면담을 가졌다. 1년간 꾸준히 지속된 이 시간을 리트너 교수는 ‘월요대담’이라 불렀다.

나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미리 질문서를 작성했다. 이 질문서를 작성하느라 며칠 동안 꼬박 책상 앞에 앉아 있기도 했다. 새로운 질문들을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이러한 시간을 통해 경제법의 기본원리와 핵심적인 쟁점은 물론 시장과 정부의 관계 등 법학의 기본문제들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과 독일의 법을 비교해 박사학위논문으로 제출한 것이 ‘기업결합규제법에 관한 연구’였다.

2004년에는 뜻있는 법률가들과 함께 아시아법연구소를 설립했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법과 제도를 비교 연구해 현지에 진출한 기업을 돕기 위한 것이다. 또 체제전환국과 개발도상국의 법제 정비 등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었다.

나는 독일 유학 중 두 가지의 꿈을 꿨다. 하나는 한국에서 한국말로 한국의 경제법을 외국학생에게 가르치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유럽경제공동체와 같은 아시아 경제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 같은 꿈은 실현가능성이 없었다. 누가 들었으면 비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꿈은 이미 실현됐다. 아시아 경제공동체와 관련한 두 번째 꿈은 진행 중이다. 아시아경제공동체를 위한 조짐도 보인다. 국내외 여러 모임에서 아시아 경제공동체의 필요성을 주장하면 일단 반응이 크게 좋아졌다. 이전에는 나를 허황된 사람으로 여겼다. 지난 1월에는 방한한 일본 총리에게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아시아지역 경제공동체를 만들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실로 엄청난 변화다.

성경에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시편 90:10)라는 말씀이 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강건해 앞으로 20년 이상 더 산다면 생전에 두 번째 꿈도 실현되리라. 이를 위해 법적, 제도적 장애요인을 찾아내 이를 제거하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이사야 60:1)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