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괴롭히고나서 “장난”… “학생들 폭력 불감증 심각”
입력 2010-02-24 18:49
지난해 12월 고등학생 김모(16)군이 떨리는 목소리로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싸움을 잘하는 같은 반 친구들의 빵과 음료수를 사가는 심부름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담임교사에게 조심스레 얘기했지만 괴롭힘은 더 심해졌다. 김군은 “학교생활이 힘들어 죽고 싶다”며 지난해 자해를 시도했다. 하지만 김군을 괴롭혔던 학생들은 “장난이었다”며 웃어 넘겼을 뿐이었다.
청예단은 24일 ‘2010년 학교폭력 트렌드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이 죽을 것 같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학생들은 폭력불감증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청예단은 지난해 11월부터 2개월 동안 전국 64개 초·중·고교생 4073명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 피해학생의 62.3%가 ‘고통스러웠다’고 응답했고 그중 15%는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학생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이 학교폭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학생의 55.1%는 빵셔틀(힘이 센 학생이 약한 학생에게 학교 내 매점에서 빵을 사오도록 지시하는 행위)이 학교폭력이 아니라고 답했다. 괴롭힘, 성폭력, 왕따가 학교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학생도 각각 42.1%, 27.2%, 16.9%에 달했다. 이러한 인식은 폭력이 발생해도 모른척하고 있는 학생이 절반 이상(57%) 되는 데도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학교폭력의 저연령화도 두드러졌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63%는 초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학교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56.1%)에 비해 7% 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조국현 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