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준비된 승리… 치밀한 작전에 타고난 지구력 ‘꿈 같은 현실’

입력 2010-02-24 21:24

꼭 행운만은 아니었다. 이승훈(22·한국체대)의 아시아 선수 첫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m 금메달은 선수와 지도자가 합작해낸 준비된 작품이었다.

◇작전이 금메달 만들었다=우리 코치진은 이승훈의 타고난 지구력을 염두에 두고 400m를 꾸준히 30초 6∼7대로만 끊는다면 메달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400m를 4바퀴씩 1600m를 전력으로 달리고 휴식을 취하는 세트 훈련으로 대회를 준비해온 이승훈은 이날 3000m부터 질주가 둔해졌고 6000m에서는 랩타임이 31초대로 떨어져 걱정을 주기도 했으나 후반 동작을 크게 하고 보폭을 넓히는 주법으로 막판 극적인 스퍼트를 일궈냈다.

실제 이승훈의 이날 레이스는 큰 기복이 없었다. 이승훈은 매 400m 구간을 30초대 후반 또는 31초대 초반에 끊으며 안정된 레이스를 이어갔다. 1만m는 초반 4000m, 중반 2000m, 종반 4000m로 나뉘는데 이승훈은 초, 중, 후반에서 모두 힘이 빠지거나 속도가 줄지 않았다. 이승훈은 쇼트트랙 국가대표 출신이어서 스피드를 유지하는 감각도 뛰어났다.

김관규 감독과 김용수 코치는 이승훈과 레이스를 펼친 반 데 키에프트(네덜란드)가 우승 후보보다 한 수 아래여서 상대 선수와 레이스를 조절하는 것을 포기했다. 상대 레이스에 구애받지 않고 400m 랩타임을 경기 끝까지 가져갈 것을 주문했다. 이승훈은 감독과 코치의 전술을 그대로 이행했다. 이승훈은 400m 랩타임 기록을 30초60∼31초60로 유지하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경기 중 김 감독과 김 코치는 손짓 발짓, 목소리로 랩타임을 체크해 이승훈에게 전달하며 페이스 조절을 이끌었다.

◇“이승훈, 금메달 자신했었다”=김 코치는 24일(이하 한국시간) 이승훈이 남자 1만m에서 금메달을 딴 뒤 “승훈이가 열흘 전 남자 50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뒤 ‘코치님, 1만m 금메달도 딸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김 코치는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으로 선수 시절 1만m가 주종목이었다. 그동안 김 코치는 같은 종목 후배 이승훈을 전담 지도해왔다.

김 코치는 “승훈이가 (지난 14일) 남자 5000m에서 이 종목 세계기록(6분03초32) 보유자 스벤 크라머(금메달·네덜란드)에게 2.35초차로 아깝게 패했기 때문에 본인이 가장 강한 1만m에서는 크라머를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승훈의 이날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이곳 시간으로 전날 밤 11시쯤 잠자리에 들어 새벽에 몇 차례 잠을 깨기는 했지만 몸은 가벼웠다.

레이스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도 나왔다. 함께 레이스를 펼친 키에프트를 마지막에 한 바퀴를 추월한 것이다.

밴쿠버=이용훈 기자 co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