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1순위 크라머 갑자기 인코스 돌진… ‘행운과 불운’ 긴박했던 순간
입력 2010-02-24 18:37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m 경기가 펼쳐진 24일(한국시간) 캐나다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 이번 대회 5000m에서 금메달을 땄던 스벤 크라머(네덜란드)는 1만m 세계기록 보유자답게 놀라운 스피드를 앞세워 2000m 구간부터 선두 이승훈의 기록을 조금씩 앞서기 시작했다. 크라머의 금메달로 굳어지는 상황. 그런데 8바퀴를 남긴 상황에서 아웃코스로 타야 하는 크라머가 갑자기 인코스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경쟁자인 한국 및 네덜란드 코치진과 심판진은 곧바로 이 사실을 눈치챘다.
대표팀 김용수 코치는 “아웃코스로 들어가야 하는데 인코스로 들어가더라. 김관규 감독이 바로 심판에게 이야기하려 했는데, 이미 심판들도 알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승훈 역시 “감독님이 ‘크라머가 실수한 것 같다’는 말을 해주셨다. 모태범도 크라머 경기 도중 ‘너 금메달이다’라고 알려줬다”고 말했다.
이승훈은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김 감독과 뜨거운 포옹을 나누며 생애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자축했다.
경기장 전광판에서도 크라머의 실수 장면을 되풀이해 보여준 데다 두 선수가 같은 레인을 도는 기이한 장면이 펼쳐지자 관중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챈 상황에서, 오직 크라머만 이 사실을 모른 채 숨가쁘게 달리고 또 달렸다.
숨이 턱에 차오른 채 25바퀴를 돌아야 하는 장거리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레인을 잘못 들어서 실격되는 것은 가끔 나오는 장면이지만 실수가 나오자마자 경기를 중단하고 포기하는 게 보통이다.
크라머는 이날 정상적으로 레이스를 펼쳤더라도 우승할 수 있었다. 8바퀴를 남기고 아웃코스 대신 인코스를 두 번 돌았으므로 그 거리만큼 적게 돈 셈이다. 김 코치는 “인코스를 두 번 돌게 되면 3초 정도 기록이 단축될 수 있다. 거리상으로는 30m 정도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이승훈보다 4.05초 앞선 기록으로 골인한 크라머가 제대로 레이스를 펼쳤다면 1초 정도 앞서 금메달을 따낼 수 있었던 셈이다.
밴쿠버=이용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