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손병호] 정부기관의 뒷조사
입력 2010-02-24 18:19
한나라당 친박근혜계 이성헌 의원이 지난 23일 정부기관이 지난해 박 전 대표에 대한 뒷조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표가 한 중진 스님과 비공개로 식사를 했는데, 며칠 뒤 어떻게 알았는지 기관원이 이 스님을 찾아와 박 전 대표를 왜 만났으며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를 캐묻더라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의원이 설명한 정황이 대체로 맞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뒷조사니, 사찰이니 하는 것은 좀 과장된 표현이라는 반응이다.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정보수집 활동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핵심 정치인들과 종교계 오피니언 리더들의 동향은 주요 정보보고 사항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의원의 의혹 제기를 계기로 ‘통상’이 진짜 통상적인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정보수집을 하는 정부 기관들의 인원을 전부 합하면 2만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분향소가 차려졌던 서울 덕수궁과 광화문 주변은 ‘시민 반(半), 기관원 반(半)’이란 얘기가 나돌았을 정도다. 규모별로는 경찰 정보과 직원이 8000명 정도로 가장 많다. 경찰 보안과 직원들도 2000명 정도 된다. 정치권은 국가정보원도 수천명의 인원을 가동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민간인은 대상이 아니라지만,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도 수천명의 정보원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도 범죄정보 수집 차원에서 100명 안팎의 정보담당관을 두고 있다. 이밖에 국무총리실과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등에서도 각각 수십명 규모의 암행감찰반을 운영하고 있다.
국가의 정보수집 활동은 꼭 필요하다. 특히 국익 차원의 활동이 많다. 산업기밀 누출을 막는 일이나, 외국인 범죄와 테러 등 국가적 위해(危害)를 막는 일, 뇌물수수 행위와 부정 사례 등을 캐내는 일 역시 정보 분야 공무원들의 활약 덕분에 가능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정보수집 활동이 부쩍 강화됐다는 것은 오피니언 리더들의 공통적인 얘기다. 한 예로, 국회에만 각 기관들에서 나온 수십명 규모의 정보원들이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고 있다. 정보가 넘치는 여의도 일대에서 맴도는 기관원들도 많다. 요즘 들어선 특히 시민사회 단체들이나 야당 정치인과 자치단체장, 여당 내 친박근혜계 의원과 단체장들이, 자신들이 주 타깃이 되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한 친박계 인사는 24일 “심지어 기업을 출입하는 정보기관 사람들이 기업 측에 정치인들과 관련된 정보가 없는지를 묻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정보수집 활동이 특정인들에게 치중되거나 수집활동이 과도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선 피대상자들의 피로감이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야권 인사들이 정보 노출에 극도로 민감해 밥집에 가는 것도 가려서 가곤 한다. 또 이들 사이에선 “아직도 네이버(naver)나 다음(daum) 이메일을 쓰느냐. G(구글)메일로 바꿔라”는 게 인사가 됐을 정도다. 외국계 서버에서 운영되는 이메일이 상대적으로 더 안전할 것이란 생각에서다. 본인의 휴대전화가 안전하지 못할까봐 비밀리에 따로 쓰는 전화를 갖고 있는 정치인들도 많다.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들도 피곤하긴 마찬가지다. 한 정보기관 인사는 “기관 간에 1보(타 기관에 앞서서 보고) 경쟁이 아주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정보가 과장돼 보고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특정 분야에 치우칠 경우 정작 국정운영에 필요한 정보가 취합되지 않을 우려도 있다. 참여정부 때 사행성 게임 ‘바다 이야기’가 전국을 휩쓸 때 기관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노 전 대통령이 “개도 짖지 않더라”고 한탄했던 일이 앞으로 반복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때문에 이번에 정치권에서 문제제기가 된 것을 계기로 청와대 등이 나서서 과도한 정보수집 활동은 없었는지, 부적절한 수집이 이뤄지는 건 아닌지, 수집분야가 치중되지 않았는지를 중간점검해줄 것을 당부한다.
손병호 정치부 차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