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선수 가족 감격 눈물… 가난과 역경 ‘金’ 밑거름
입력 2010-02-25 00:42
“승훈이가 태어난 날, 승훈이 엄마가 먹을 밥을 내가 지었어요.” “나는 매일 승훈이를 업고 골목길을 다녔어. 한 돌도 안 되는 아기가 좁은 길을 기억할 정도로 명석했다니까.”
이승훈(22) 선수가 금메달을 딴 24일 이모할머니, 종고모 등 친척까지 서울 예장동 큰아버지 집에 모여 금빛 잔치를 즐겼다. 가족과 친척 10여명 모두 이 선수의 아버지 어머니인 양 기쁨을 나눴다.
오전 4시부터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가족들은 이 선수의 경기 결과가 나오자 “우리 승훈이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어머니 윤기수(48)씨는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숨이 멎을 만큼 소름이 돋았다.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기쁨”이라며 흥분과 감격을 숨기지 못했다.
아버지 이수용(52)씨는 지난 10여년이 영화처럼 눈앞을 지나간다고 말했다. 이 선수의 삶은 가난과 역경을 끈기와 도전으로 극복한 인생 드라마였다.
이 선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이던 1998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이씨의 부모는 훈련 비용을 대기 어려웠고, 아들을 아이스링크에 데려다줄 자동차마저 처분해 이 선수의 운동을 중단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이 선수는 ‘혼자 새벽에 일어나 버스 타고 가겠다’며 버텼다. 결국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중고차를 구입했고, 하루도 빠짐 없이 데려다주며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다.
이 선수는 서울 신목고와 한국체육대에서 쇼트트랙 선수로 활약했지만 경쟁의 벽은 높았다. 지난해 4월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충격 속에 이 선수가 내민 승부수는 종목 전환이었다. 스피드스케이팅용 스케이트화를 빌려 신고 나선 이 선수는 ‘더는 잃을 것이 없다’며 투혼을 불태웠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불굴의 투지를 발휘한 이 선수에게 가난과 눈물로 점철된 인생역정은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싸울 수 있는 밑거름이었다.
어머니 윤씨는 이 선수의 초등학교 4학년 때 일기장을 공개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 김동성 형처럼 잘할 것이다.” “힘들지만 꾸욱 참았다. 나의 미래를 위해서.”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