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고난이 간직한 비밀
입력 2010-02-24 17:35
시편 119편 67절
Key Life 선교회를 이끌고 있는 미국의 방송 설교가요, 저술가인 스티브 브라운의 저서 ‘당신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원제:When your Rope Broken)’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어미 새가 새끼를 둥지에서 내보낼 때가 됐다고 판단하면 둥지에서 새끼를 몰아내기 시작하는데 특별히 고집 센 새끼가 둥지를 떠나지 않으려 하면 어미 새는 곧 둥지를 허물어뜨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어미 새와 새끼 새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엄마, 지금 뭐하는 거야!” “네 둥지를 허물고 있단다.” “엄마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엄마, 지금 제 정신이야 미쳤어?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 “물론 사랑하지. 사랑하기 때문에 둥지를 부수는 거야. 그래야 네가 날 수 있거든. 너는 날아야 해.”
새끼 새는 갑자기 공중에 붕 떠서 날갯짓을 합니다. 스스로의 능력에 놀란 새끼 새는 희열에 찬 목소리로 엄마를 부릅니다. “엄마 이것 봐. 내가 날고 있어.” “그래, 너는 날고 있어. 둥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란다.”
성경은 하나님이 왜 우리 삶의 둥지를 무너뜨리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욥기의 고백을 빌리면 우리를 정금 같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해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삶의 현실에서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고난의 비밀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고난의 비밀을 깨달은 사람은 많이 있지만 구약의 인물 속에서는 요셉과 다윗을 꼽고 싶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 받아 애굽으로 팔려갔고, 보디발의 아내에게 성폭행범이라는 모함을 받아 옥중생활을 하였으나 고난의 길을 통해 일약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20여년 만에 형들을 만나 요셉을 팔아먹은 죄상이 드러날 때 행여나 형들이 두려워할까봐 그들을 위로하면서 형들이 나를 이곳에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앞서 보내신 것이라고 말합니다(창 45:8). 자신의 삶에 배신과 설움의 서릿발이 내렸지만 묵묵히 봄을 기다리는 밀알처럼 고난의 삶을 통해 자아가 죽고 주님만 남는 성도로 거듭난 것입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쫓겨가는데 시므이란 자가 나와서 저주를 합니다(삼하 16장). 아비새란 장군이 분개해 시므이의 목을 잘라 오겠다고 하니 다윗은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야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시므이가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므이더러 나를 저주하라고 하신 것이라고 너그러이 용서하였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신앙의 깊은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다름 아니라 그들은 한결같이 신앙의 관점이 상대적 관점이 아닌 절대적 관점의 신앙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상대적 관점이란 신앙의 환경을 탓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문제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적 관점이란 문제 원인의 출발을 내 탓으로 여기는 자세이며 전적으로 타자의 관점에서 나를 돌아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풍랑 속의 요나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줄 아노라”(욘 1:12)고 했던 고백처럼 절대적 신앙의 관점을 본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마쓰시다(松下) 전기의 창업자였던 마쓰시다 고노스케의 전기에 보면 그는 배움이 짧았으며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이유 때문에 좌절하거나 절망치 않고 오히려 그 덕분에 평생을 배움의 자세로 겸손하게 책을 가까이 하게 되었으며 늘 건강에 자만하지 않으므로 장수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난 때문이 아니라 고난 덕분에, 환난 때문이 아니라 환난 덕분에 믿음의 승리를 가져왔다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송용현 목사 안성중앙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