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신의 깜짝 한수] LG배 결승1국 ● 이창호 9단 ○ 콩지에 9단
입력 2010-02-24 17:37
옅은 비가 내려 거리를 촉촉하게 적시더니 실타래 풀리듯 날이 살살 풀린다. 제법 봄날처럼 따사로운 날씨에 성격 급한 이들의 차림은 이미 가볍다. 덩달아 가벼운 복장을 하고 하루를 방심하고 다녔더니 감기에 걸려버렸다. 역시 아주 조금의 틈도 용납하여 주시질 않는구나.
경우의 수가 많은 바둑에는 관전자의 예측과는 달리 돌발 상황이 자주 나타난다. 그중에 정말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 나오게 되는 경우가 패와 축일 것이다. 패를 할 때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패의 크기와 그 패감의 가치를 계속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축머리도 이와 비슷해 축의 크기와 축머리의 크기를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하수들에겐 한방에 끝나버리게 만드는 골칫거리 중 하나다.
오늘 소개할 대국은 이창호 9단 대 콩지에 9단의 LG배 결승1국. 초반 우상귀의 신형이 나오며 알쏭달쏭하게 진행된다. 실전1의 흑1로 젖힌 장면에서 축이 불리한 백은 장고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삼십여 분의 장고를 거듭하며 결행한 축머리를 쓰는 과정이 볼만하다.
늘 그렇지만 두어지는 과정을 보는 것과 본인이 대국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진행과정은 너무나 다르다. 실전1의 백2로 먼저 끊고 백4로 붙인 수! 손해가 워낙 큰 수라 보통은 a의 씌움이 떠오르지만 좋지 않다고 판단한 백은 이 축머리에서 얻어낼 수 있는 득과 축을 몰며 당할 수 있는 손해를 계산해 차례차례 수순을 밟아간다. 백6으로 한 점을 몰아 나간 흑 한 점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든 다음 다시 백8로 젖혀 실리를 취한다. 흑은 실전2의 흑1로 좌하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백2,4로 실리를 얻었다.
너무나 넓게 남아 있는 여기까지의 장면에서 형세판단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이 후의 과정이 더 중요하겠지만 실전1의 장면에서 아마도 백은 최선의 선택을 찾아낸 것이 아닌가 싶다. 이 후 서로 누가 더 인내심이 센지 겨루기라도 하듯 참고 또 참는 기술을 보여주더니 결국 백의 인내심이 승리했다. 이로써 콩지에 9단은 세계대회 12연승 중이라는데 예선전에서도 한 판 이기기 힘든 필자로서는 참으로도 놀랍고 부러울 따름이다. “그는 자기 자신이 혼자서 고련(苦鍊)을 했다”는 중국 팀 단장인 위빈9단의 인터뷰 기사를 보니 부러운 마음도 저만치, 역시 일류가 되는 길엔 타고난 재능과 그에 따른 피나는 갈고 닦음이 있겠구나 싶어 새삼 그동안의 게으름이 부끄러워진다.
<프로 4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