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CEO 리더십-(4) 최종현 SK 2대회장] 1994년 한국移通 고가인수 지적에 “우린 미래를 샀다”’
입력 2010-02-25 00:44
외환위기가 닥치기 1년 전인 1996년 최종현 SK 회장은 정부 관료와 기업인들에게 “우리 경제가 이대로 가면 곧 위기가 닥칠 것이니 기업은 임금을 동결하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호소했다. 97년 10월과 11월엔 폐암 수술을 받아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몸으로 청와대를 찾았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비상조치를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98년 1월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를 만나 재계의 경제 회생 대책을 설명했다. 그해 8월 최 회장은 별세했다.
외환위기를 미리 경고한 것은 최 회장의 혜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10년을 소리 없이 준비하는 미래 설계자”라고 최 회장을 회고했다.
SK그룹은 최종건 창업주가 세우고 그의 동생 최종현 2대 회장이 키웠다. 최 회장은 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이라는 현재 SK의 두 축을 마련했다. 모두 10년 앞을 내다보는 혜안으로 이뤄낸 결과다.
80년 당시 중견 섬유기업에 불과했던 선경(현 SK)이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했을 때 언론에선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고 표현했다. 최 회장은 이미 73년 1차 오일쇼크 와중에 ‘석유에서 섬유까지’ 사업을 수직계열화하겠다고 천명하고 차근차근 정유사업을 준비해왔다.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고 우리나라가 이스라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석유수출국기구(OPEC)로부터 석유공급 50% 감축 통보를 받자 사우디아라비아 왕실과 친교가 있던 최 회장이 민간외교관으로 나섰다. 그는 77년 사우디 석유장관으로부터 “한국에 원유 도입을 전담할 민간회사가 설립되면 필요한 만큼 원유를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런 노력으로 쟁쟁한 대기업을 제치고 유공을 인수할 수 있었다.
84년엔 미주 경영기획실을 만들어 10년 뒤 먹거리를 고민하기 시작, 이동통신을 차세대 사업으로 결정했다. 치밀한 준비 끝에 92년 제2 이동통신 사업권을 따냈으나 일각에서 정치적 특혜 시비가 일자 사업권을 반납해버렸다. 결국 정권 교체 이후인 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해 꿈을 이뤘다. 당시 2000억원대로 추산되던 매물을 4271억원에 인수한 것을 두고 “너무 비싸게 샀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최 회장은 “기업을 산 것이 아니라 통신사업 진출 기회를 산 것이다. 기회를 돈으로만 따질 수 없다”고 일축했다.
SK가 유공과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한 이후 사업을 비약적으로 키워나갈 수 있었던 동력은 특유의 경영시스템인 ‘SKMS(SK Management System)’다. 최 회장은 75년 신년사에서 “설비 경쟁의 시대는 지났고 이제부터는 경영 전쟁의 시대”라고 선언한 뒤 SKMS 개발에 들어갔다.
SKMS의 핵심은 ‘인간 위주의 경영’이다. 기획, 조직관리 등 경영의 정적 요소보다 구성원의 자발적 능력 발휘를 위한 동적 요소 관리에 중점을 둔다. SKMS의 실천방법론은 ‘슈펙스(SUPEX)’다. ‘Super Excellent’의 줄임말인 SUPEX는 인간의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단계를 꾸준히 추구하는 경영 기법을 뜻한다. 후일 최 회장은 “SK의 도약은 모두 SUPEX 추구의 산물”이라고 자평했다.
사람을 중시한 최 회장은 “자원도 없고 땅덩어리도 작은 나라가 세계 경쟁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길은 인재를 키우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 같은 신념으로 73년 ‘장학퀴즈’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74년 사재를 들여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최 회장의 업적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우리나라 장묘문화를 개선시킨 점. 그는 98년 8월 세상을 떠나면서 “내 시신을 화장(火葬)하라. 훌륭한 화장시설을 만들어 사회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매장이 당연시되던 당시로선 신선한 충격이었다. 최 회장의 유언은 12년 만인 지난달 12일 SK가 충남 연기군 세종시 은하수공원에 장례문화센터를 기부하는 것으로 결실을 맺었다.
나웅배 전 경제부총리는 “고인은 어려운 시대에 당장 돈 벌 궁리를 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라를 먹여 살릴 산업을 고민한 선각자였다”고 회고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