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팬에게 한숨은 내가…” 천하의 삼룡이 천상의 무대로

입력 2010-02-23 22:02

암울했던 지난 시대에 몸을 아끼지 않는 바보 연기로 많은 국민에게 웃음을 선사했던 ‘비실이’ 배삼룡(본명 배창순)씨가 23일 오전 2시10분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흡인성 폐렴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외아들 동진씨는 “아버지께 들은 마지막 말은 ‘걱정 마. 나 무대에 또 설거야’라는 다짐이었다”면서 “그토록 무대에 서고 싶어하셨는데 평소 건강관리를 못해 아버지의 꿈을 이뤄드리지 못하게 돼 죄송하다”고 울먹였다. 2007년 한 행사장에서 쓰러진 배씨는 천식과 합병증 등으로 3년째 투병생활을 해왔다.

1960∼70년대 한국 코미디계를 주름잡았던 고인은 ‘개다리춤’의 원조이자 이주일, 심형래로 이어지는 ‘바보 연기’의 출발점이었다. 어눌한 표정과 어수룩한 말투가 압권인 바보 연기로 국민들의 시름을 달래줬다. 특히 구봉서와 환상의 콤비로 활동하며 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1946년 유랑 악극단 ‘민협’의 단원으로 코미디언 생활을 시작한 그는 ‘장미’ ‘무궁화’ 등 많은 악극단을 거쳐 방송계에 진출했다. 69년 MBC 개국과 함께 TV에 데뷔한 그는 ‘웃으면 복이 와요’를 시작으로 전성기를 달렸다. ‘요절복통 007’ 등 11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을 정도로 연기력도 수준급이었다. 코미디와 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400여편에 출연하며 ‘한국의 찰리 채플린’이란 별명을 얻었다. 방송사가 그를 섭외하기 위해 대낮에 납치극까지 벌인 에피소드는 그의 인기를 증명하는 일화다.

99년 12월 출간한 자서전 ‘이 생명 다하도록 웃기고 싶다’처럼 고인의 희극 사랑은 몇 차례 위기 속에서도 계속됐다. 80년 제5공화국 시절 신군부의 ‘저질 코미디언 출연 규제’ 1순위로 지목되면서 인생의 내리막길이 시작됐지만 희극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방송 출연 정지를 당한 후 미국으로 향한 그는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전전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3년 반 동안 머물다 83년 귀국한 그는 웃음 뒤에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희극 활동으로 서민들을 웃기고 울렸다. MBC ‘웃으면 복이 와요’ ‘부부만세’는 그의 주가를 한껏 높인 프로그램이었다. 고인의 연기 철학은 ‘웃음은 남을 주고 한숨은 내가 갖는다’였다. 그러나 웃음 뒤에는 연이은 사업 실패와 생활고로 인한 남모를 고통이 숨어 있었다.

고인은 병상에서도 ‘나는 다시 태어나도 삼룡이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해 왔지만 그는 생활고와 장기간의 투병생활에 지쳐 있었다. 특히 1억3000여만원의 병원비를 못 내 병원 측으로부터 진료비 청구 소송을 당하는 등 그의 불행한 말년은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2001년 MBC 명예의전당 코미디 부문에 이름을 올렸으며 2003년 제10회 대한민국 연예예술대상 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은 아들 동진씨, 딸 경주 주영씨 등 1남2녀.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5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분당추모공원이다(02-3010-2295).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