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고 17년간 106개국 여행 日 히데토 기지마씨… 세계인과 접촉하며 편견을 넘는다

입력 2010-02-23 21:12


장애인 관광 활성화 세미나에 참석

한국 장애인들에 경험담 들려줘


“누군가 제게 10억원을 주면서 ‘이 돈으로 다리를 고칠 수 있는 수술을 받을래, 아니면 여행을 할래’라고 묻는다면 전 여행을 선택할 겁니다. 휠체어는 이제 제 몸의 일부거든요.”

검은색 목티에 연두색 목도리를 멋스럽게 두른 히데토 기지마(37)씨는 맑은 날씨만큼이나 기분이 좋다는 말로 인사를 건넸다. 히데토씨는 23일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가 서울 여의도동 이룸센터에서 개최한 ‘장애인 관광 활성화를 위한 국제 세미나’에 참석, 한국의 장애인들을 만났다.

‘일본을 넘어 세계로’를 비롯해 3권의 책을 펴낸 그는 17년간 미국 한국 중국 등 세계 106개국을 누빈 여행가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동반자인 휠체어를 타고서.

히데토씨는 태어나면서부터 장애인은 아니었다. 1990년 고등학교에서 럭비를 하던 그는 사고로 척수를 다쳤고 그 이후부터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됐다. “그곳에 가면 장애인 설비가 없는데, 어떻게 가겠니.” “장애인은 놀이기구를 타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야.” 장애인을 향해 던지는 세상의 말투는 지나치게 친절하거나, 냉담했다.

그러나 대학교 1학년 때 한 달간 머문 미국 여행은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곳에서 어학원을 다닌 히데토씨는 같은 반 학생끼리 주말에 등산을 간다는 소식을 듣고 조심스레 지원했다. “저도 하이킹을 갈 수 있을까요?” 그의 질문을 받은 어학원 선생님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하고 싶은가요? 그렇지 않은가요?” 처음으로 그는 장애인에게 불가능을 통보하지 않고 선택을 묻는 세상을 경험했다. 그때부터 히데토씨는 여행을 시작했다.

“돈이 많으신가 봐요.” 그가 장애인 여행가로 유명세를 타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하지만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책을 발간해 번 돈으로 알뜰하게 여행을 다닌다. 여행지에 직접 가서 가장 싼 방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고, 가격이 높은 장애인용 객실은 이용하지 않는다.

어려운 점도 많다. 특히 94년 방문했던 한국의 경주와 부산이 그랬다. 휠체어 때문에 택시가 더럽혀진다는 이유로 기사들은 그를 거부하기 일쑤였다. “장애인이 왜 거리에 다니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듯 여행지도 천차만별이지요. 장애인이라서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많지만 바꿔 생각하면 현지인과 접촉할 계기가 많다는 거예요.” 히데토씨의 하늘을 나는 휠체어는 앞으로도 계속 세계를 누빌 것이다. 국경과 편견을 넘고서 말이다.

글·사진=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