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경] 아이처럼
입력 2010-02-23 17:58
주변에 결혼적령기이거나 결혼을 하고 어린 자녀를 둔 직장여성들이 많아서일까. 요즘 부쩍 아이 양육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거나, 그릇된 양육태도 등에 대해 말하는 일이 잦아졌다. 자녀가 있는 한 직원은 평소 직장생활로 아이를 보살펴주는 시간이 넉넉지 못한 것에 미안해하며 잘못된 행동을 방치하다보니 아이가 산만해지고 버릇이 없어졌다고 하소연한다. 또 다른 직원은 조카와 장난감을 바꿔가며 놀아주니 아이가 무척 좋아하더라며, 이러한 방식이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신뢰를 쌓아가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아이에 대한 갖가지 사례에 나름의 분석을 덧붙이고 질타와 반성, 웃음까지 버무린 사회복지사들의 수다는 끝이 없다.
미국의 심리치료사 플로렌스 포크는 아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사랑을 할 수 있는 아이의 능력은 눈부시다. 아이가 겪는 고통은 무엇이든지 간에 아이의 사랑은 끈질기다. 아이는 부모에게 충성할 것이다. 부모 중 최소한 한 사람에게라도 말이다. 아이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그리고 필사적으로 잊으려고 애쓰면서 자기에게 가해진 거짓말과 약속의 불이행과 폭력을 용서한다. 아이는 자신을 학대한 사람까지도 용서한다. 용서하지 못하는 오직 한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여기서 나오는 ‘아이’에 대한 설명은 소위 ‘어른’이라는 개념과는 너무도 상반되는 것들이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들의 예전 모습이라니 놀랍기가 그지없다.
아이들은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성장한다. 그 과정 속에서 사춘기라는 성장통을 겪으면서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이후부터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독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한 걸음 한 걸음 어른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아이들이, 또 청소년들이 보는 어른의 모습은 어떠한가. 밖으로는 신뢰와 정직의 표상처럼 믿었던 도요타가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에만 급급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안으로는 세종시 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연일 싸우는 어른들의 모습은 딱하다 못해 한심하다. 세상사를 아이의 눈으로 보면 정답이 금방 나온다. 국회의원들도 손자손녀의 눈높이로 몸을 낮추면 의외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을 텐데, 키들이 너무 크다.
우리들은 모두 아이였던 시절을 거쳐 어른이 됐다. 어른들은 모두 자신의 관점만이 옳다고 생각해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나무라지만 어른의 자격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는 지독히도 게으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지, 약속의 불이행과 폭력에 대해 지나치게 너그럽지 않은지, 늘 나만을 용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성찰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아이의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 자기가 만들어 온 틀에 세상을 끼워 넣지 말고, 선입견 없이 세상을 끌어안을 수 있는 넓은 이해심과 포용력이 필요하다. 이 봄에 자신의 내면에 고이 잠자고 있는 ‘순수의 영혼’을 끄집어내 보는 것은 어떨지.
이혜경(한국아동복지협회 기획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