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홍규] 이규혁 선수와 한국의 기업문화
입력 2010-02-23 17:58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모태범, 이상화란 21살 두 동갑내기가 큰일을 냈다. 젊은 세대 특유의 당찬 오기가 영광의 열쇠였다고 한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은 ‘규혁이 형에게 감사한다’는 그들의 말이었다. 이규혁은 빙상 팀 일원으로 어린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모양이다. 때로는 동생들의 마음을 달래며,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 했던 그 마음이 환희의 순간에도 떠올랐던 듯하다.
배려는 경쟁을 위한 인프라
세상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에 배려의 힘이 필요하다. 올림픽도, 사업도, 한 치의 양보가 있을 수 없는 세상이지만, 배려의 힘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배려야말로 치열한 경쟁을 떠받치는 인프라이다. 우선 배려가 커지면 거래비용이 줄어든다. 경쟁은 효율을 가져오지만 협력을 어렵게 만든다. ‘나만은, 내 자식만은’ 하는 생각이 남에 대한 배려를 없애는 것이다. 배려가 없어지면 사람이 기댈 곳은 법뿐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소송이 빈번한 나라가 되었다. 그만큼 각박하다는 이야기이다. 나의 이익만 좇는 사회는 서로를 믿을 수 없어 거래비용이 큰 사회가 된다. 미국 자본주의가 20세기를 지배할 수 있었던 데는 내면에 흐르는 절제와 배려의 정신도 한 몫을 했다. 오늘날 미국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그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에서 보인 월가 경영자들, 자동차 CEO들의 행태가 그것이다.
배려는 이제 단순한 사회 인프라가 아니다. 경제의 전면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 20세기의 사업모델은 소위 ‘만들어 팔기만 하면’ 되는 방식이었고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통제하는 방식(silo)이었다. 그러기에 기업은 내부만 다지면 되었고, 시장점유율만 확대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제 기업의 가치창출 원천이 바뀌고 있다. 다양한 구성원을 갖는 협력 생태계가 가치창출의 원천이 된 것이다. 아이폰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수익의 70%를 내주고 소프트웨어 개발업자들과 협력하는 앱스토어란 생태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는 지금 하나의 변곡점에 서 있다. 협력적인 생태계가 지배하고, 소프트웨어가 가치창출의 중심인 시대로 변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 기업들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가? 우리 기업 일부는 이미 세계 정상에 도달해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에 대응할 능력은 취약해 보인다. 소프트웨어 기반은 아직 유치단계고, 협력의 생태계를 만들 기업은 흔치 않아 보인다. 한국 경제가 위기라 한다면, 그것은 기술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노력을 안 해서도 아니고,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는 문제 때문이다.
기업의 성공은 효율과 창조에 있다. 문제는 효율과 창조가 서로 다른 속성을 가진 상반된 힘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국 경제가 달려온 길은 효율화였다. 기업들은 더 싸고 좋은 제품을 내놓는 일에는 익숙했으나, 하청업체들과의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나 경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조직 내부를 보더라도 창조를 위한 다양성의 문화보다 효율을 위한 통제와 획일성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그런 효율에는 한계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기업 도요타가 최근 겪는 어려움에서도 그 한계를 볼 수 있다.
협력의 생태계 만들어야
성공은 그 순간부터 새로운 변화와 창조를 요구한다고 한다. 우리가 가야 할 길도 창조다. 이는 열심히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점진적 혁신이 와해적 창조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다. 창조에는 인재도 필요하고, 협력을 이끌어낼 배려도, 여유를 투자로 생각하는 철학도 필요하다. 경쟁자를 이길 모태범도, 경쟁 속에서 배려를 만들어 갈 이규혁도 필요하다. 다시 말해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이루어낼 새로운 문화가 필요한 것이다. 경영이란 그래서 정말 하나의 종합예술인가 보다.
이홍규(KAIST 교수 경영과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