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기와 아이디어는 우리의 힘”… 옥탑방서 이사 위한 곗돈 2000만원으로 제작

입력 2010-02-23 21:16


오영두·장윤정 부부감독

6개 에피소드로 구성 서사성 살려


1대의 카메라, 2000만원의 제작비, 12평짜리 옥탑방이 영화 ‘이웃집 좀비’의 제작팀이 가진 전부였다. 하지만 오영두(35)와 장윤정(36), 류훈(37)과 홍영근(32) 등 4명의 감독에겐 영화를 찍고 싶다는 열정과 도전정신이 있었다.

결과는 기대이상이다. 영화는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객상과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고, 일본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 할리우드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12평짜리 옥탑방에서, 이사비용으로 부었던 곗돈 2000만원으로 영화를 제작한 오영두·장윤정 부부 감독을 22일 서울 통인동 인디스토리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웃집 좀비’는 국내 개봉 전 일본 영화 배급사인 엑설런트 필름스에 계약금 170만엔(약 2200만원)에 선 판매돼 (다행히) 실제작비는 건졌다.

“계약금 중 반을 받았는데, 영화 개봉 후에도 들어가는 돈이 꽤 있어요. 배우들 개런티도 줘야하고, 여기저기 분배해야 할 돈이 많네요. 관객들이 좀 봐주셔야 빚을 안 질텐데….(웃음)”(장 감독)

“엑설런트 필름스는 부천국제영화제 때부터 저희 영화에 관심을 가졌어요. 일본은 한창 좀비 영화 붐이 일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좀비는 서로 물어뜯어서 괴물로 변하는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이런 특성이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리는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오 감독)

‘이웃집 좀비’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미국식 좀비 영화와는 궤가 다르다. 배경은 2010년 좀비 바이러스로 초토화된 서울. 좀비는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괴물이 아니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불쌍한 시민이다. 정부는 좀비 감염자를 찾아 제거하려고 하지만 애인, 어머니 등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로 변해버린 시민들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애쓴다. ‘이웃집 좀비’는 이런 설정 하에 6개의 에피소드를 모은 옴니버스 영화다. 4명의 감독이 각각 각본, 연출, 촬영에 연기까지 맡으며 1인 다역을 해냈다. 애인을 따라 좀비가 돼버리는 ‘도망가자’나 자신의 손가락을 베 어머니를 먹이는 ‘뼈를 깎는 사랑’, 좀비 감염자들이 치료를 받은 후 일상생활로 돌아와 사는 모습을 그린 ‘그 이후… 미안해요’ 등은 좀비 영화에서 처음 나오는 설정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공존의 대상인 ‘이웃’과 박멸의 대상인 ‘좀비’의 이 묘한 조합은 ‘나’와 ‘타자’의 구분을 애매하게 만든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누구나 언제라도 좀비가 될 가능성은 존재한다.

“단지 좀비를 공포의 대상으로 보고 싶지 않았어요. 공멸해가는 좀비의 모습이 현대 사회의 어떤 일면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단순히 호러 측면만 보여주지 않기 위해 옴니버스 구성에 서사성을 부여했죠.”(오)

4명의 감독은 모두 영화판에서 10년 이상 일한 영화꾼들이다. 다양한 경험을 거친 이들이 모였기에 각본, 촬영 등 모든 작업을 이들 안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장 감독은 1995년 ‘은행나무 침대’ 분장팀으로 영화와 연을 맺은 베테랑 분장사다. ‘번지점프를 하다’, ‘가을로’, ‘집행자’ 등이 그의 손을 거친 영화다. ‘이웃집 좀비’에서는 ‘그 이후’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오랜 시간동안 현장에서 좋은 감독님들을 봤던 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사실 이번엔 감독, 각본 뿐 아니라 배우와 스텝들 밥 해먹이는 것도 중요한 임무였고요.(웃음)”(장)

오 감독 역시 95년 ‘꼬리치는 남자’ 연출부로 시작해 ‘두사부일체’ 미술팀, ‘황진이’ 조감독 등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류 감독은 99년 ‘텔미섬딩’ 제작부로 시작해 촬영, 현장 편집 등을 거쳤고 홍 감독은 연기 전공으로 ‘의형제’에도 출연했다.

‘이웃집 좀비’의 제작비는 단순 계산으로 치면 영화 ‘아바타’의 1분 제작비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영화의 가치는 돈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특히 자본 규모가 미약한 한국영화의 미래와 저력은 바로 이들, 젊은 영화인들의 패기와 무궁무진한 아이디어에 있다는 것을 ‘이웃집 좀비’는 새삼 확인시키고 있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