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1박2일’ 녹화현장 숨은 주역들… 80명의 게릴라부대 “우린 언제나 무박2일”
입력 2010-02-23 17:46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강풍과 입이 얼어붙을 정도의 추위에도 미동도 하지 않는 이들. 오히려 “이 정도는 추운 것도 아니에요. 날씨 좋네”라고 호탕하게 웃는다. 이들은 또한 게임에 몸을 던지는 MC 7명을 보면서 구경꾼들이 배를 잡고 웃어대도 “이 정도는 대박이 아니에요. 평타, 평타했네”라고 심드렁하게 넘어간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는 차 속에서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을 토로하는 기자 옆에서는 “이 정도는 멀미도 아니에요. 배에서 몸 한번 붕 날라봤어요? 안했으면 말을 마요”라고 타박을 준다. ‘개그콘서트’의 ‘달인’이 아니다. 지난 19일 만난 KBS2 ‘1박2일’의 제작진은 고유한 문화를 구축한 신기한 부족 같았다.
신춘특집 ‘경남 통영 욕지도’ 편 촬영현장에서 기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일반인의 1.5배 크기 두상을 가진 강호동도 아니고, 국민 남동생 이승기도 아니었다. 7명의 MC 앞에서 진을 친 제작진 무리였다. 카메라 감독, 조명 감독, 작가, 코디네이터, 매니저 등까지 포함해 식구는 80여명에 달했다. 이들이 한끼로 소비하는 식사만 120인분. 대식구를 실어 나르는 차량은 20대. 게다가 자동차는 고추냉이, 식초더미와 흰 수건을 싣고 다녔다. 제작진의 생활 습성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박2일 동안 촬영현장을 지켜본 결과 이들은 유목민을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높은 기동성이 첫 번째 특징이다. 낮 12시, 통영 달아공원에서 오프닝 촬영을 끝낸 후 철수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강호동 등 MC 7명은 1시간 안에 NG없이 오프닝 촬영을 마쳤다. ‘컷’ 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한 쪽에서 ‘철수’라는 소리가 나왔고, 그 순간 제작진의 손길은 빨라졌다. 무거운 카메라 대를 접고, 바닥에 떨어진 소품을 박스에 담았다. 붐 마이크와 조명등을 재빨리 정리해서 차량에 싣는 데는 채 1분도 소요되지 않았다. 지미짚(크레인에 매달려 있는 카메라) 감독 이은일(37)씨는 “현장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촬영을 하다보니 카메라 세팅하고 철수하는 데에는 이제 도가 텄다. 하루의 대부분을 배나 차로 이동하는 데 보내다보니 촬영 도구 정리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라며 웃었다. 하긴 백두산, 흑산도에도 카메라를 세웠고, 세팅할 수 없는 골짜기에서도 땅을 평평하게 만들어서라도 촬영을 한 이들이다.
탁월한 기후 적응력도 ‘1박2일 유목민’의 특징이다. 두꺼운 겨울 코트를 입고 간 기자를 보며 “왜 이리 춥게 입었냐”라는 제작진의 걱정은 농담이 아니었다. 겨울 파카를 입고 있던 이은일 씨는 “이것은 얇게 입고 온 것”이라면서 “정말 추울 때는 찌르면 뒤뚱할 정도의 옷을 입는다”고 말했다. 메인 카메라 감독인 강찬희(49)씨도 “오늘은 제작진이 비교적 얇게 입은 편이다. 파카도 진짜 두꺼운 게 있는데 사람들이 안 입고 왔다. 바지도 다들 청바지 아니냐. 원래는 등산용의 1.5배 두께인 바지를 입는다”고 말했다. 야외 촬영이 대부분이고 심지어는 밖에서 자기도 하기 때문에 이들의 차에는 항상 여벌의 겨울 잠바가 준비돼 있다. MC들의 코디들도 “잠바 5∼6벌, 신발 5 켤레 정도는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마지막으로 ‘1박2일’ 제작진이 뛰어난 운동 능력의 소유자인 점도 유목민과 닮았다. 운동 능력이 뒤떨어진다면 지구력이라도 좋아야 한다. 지구력이 부족하다면 불타는 승부욕이 있어야 한다. ‘1박2일’에 나오는 모든 게임은 사전에 제작진이 체험해야 하고 종종 MC들과 음식이나 잠자리를 놓고 한판 승부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7시부터 시작된 욕지도 해산물을 놓고 벌어지는 게임은 그 전에 제작진이 나서 직접 테스트를 거쳐 틀이 완성된 형태다. 윗몸 일으키기, 줄넘기 쌍쌍이, 제기차기 등 80여명의 제작진 중에서 에이스를 뽑아 시범을 해보고 현장 반응을 살펴본다.
MC들과의 게임에서 발군의 실력을 뽐낸 김대주 작가(30)는 “이제는 제작진 뽑을 때 잘하는 게임을 고려할 정도”라며 웃었다. 이어 “농구 잘하는 스텝이 들어오면 농구할 때 비밀병기로 아껴둔다”면서 “MC들의 승부욕이 대단해서, 제작진도 승부욕이 투철해야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욕지도를 발칵 뒤집어놓은 80여명의 유목민이야말로 1박2일의 숨은 주인공이었다.
통영=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