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권오승 (7) “받은 은혜가 무엇이더라”… 부산했던 간증 준비

입력 2010-02-23 17:34


주님의교회는 매년 여름 전교인수련회를 개최한다. 가능하면 모든 성도들이 참석하도록 여러 번 광고한다. 교회를 옮긴 그해 1991년. 나도 광고를 들었다. 하지만 수련회는 주로 어린아이들이나 여자들이 간다고 생각해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겼다. 특히 그 기간 지방에서 심포지엄이 있어 참가하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참가 신청 막바지 때였다. 아내의 권유로 구역모임 종강파티에서 구역장이 광고를 했다. “여름수련회 참가 신청을 마감하는 날입니다. 아직 신청하지 않은 분은 지금이라도 신청하세요. 수련회를 위해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나도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 순간, 엉뚱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야, 이 녀석아, 네가 하나님이라면 네 기도를 들어 주겠니?”

당시 나는 모교인 서울대 교수로 채용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상황을 점검했다. ‘하나님의 수련회 초청에 나는 응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모교로 보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너무 이기적이었다. 당장 참가 신청을 했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흘렀다. 다음날 새벽, 담임목사님이 전화를 걸어 “팀별 성경공부를 맡아 달라”고 했다.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때까지 성경을 완독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목사님은 팀장을 위한 별도교육이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팀장 교육은 5일간 새벽기도 후 1시간씩 진행됐다. 주제는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였다. 나는 우선 주제부터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전교인수련회 참가, 팀장 맡은 것 등이 모두 하나님께서 나를 지명하여 부르신 결과라는 뜻인데, 만약 그렇다면 조금 더 일찍 참가하도록 하시지…” 싶었다. 거기까진 좋았다.

수련회에서는 마지막에 간증 순서가 있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나누는 자리였다. 나는 현기증이 날 만큼 아찔했다. 그때까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은혜란 공짜로 받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인생에 공짜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잘 된 것은 다 내 노력의 보상이었고, 그나마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일. 나는 내게도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받은 은혜를 깨닫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라, 이제까지 받은 은혜가 하나도 없으니 은혜를 달라는 것이었다. 큰 은혜는 바라지도 않고, 작은 은혜라도 좀 달라고 기도했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응답은 없었다. 수련회가 다가와도 변화가 없었다. 나는 떼를 썼다.

“하나님, 은혜를 구하는 것이 오로지 저 자신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제게 은혜를 주지 않으시면 결국 간증을 못할 테고, 그러면 우리 팀원 모두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무능한 팀장이라는 평가는 상관없습니다. 그러니 부족한 저 말고 팀원들 생각해서 조금만 은혜를 주십시오. 저도 간증할 수 있도록.”

수련회 초반 나는 계속 같은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3일째 되던 날, 역시 새벽예배 때 같은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렸다.

“뭐, 은혜 받은 것이 없다고 ?” 하나님 말씀이었다. “네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이 모두 은혜인데, 은혜 받은 것이 전혀 없다고 ?” 지난 40여년간의 삶이 마치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쳤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