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여성 제3국 체류 중 인권침해 심각”… 국가인권위, 첫 실태 발표
입력 2010-02-23 00:48
“날이 밝아서 떠났는데 오후 1시 반이 되니까 배가 아프더라고요. 오줌을 누었는데 밑이 뜨거워서 보니까 애가 나왔습니다. 탯줄을 잡아 뽑으니까 태반이 쏙 빠졌어요. 수건으로 애를 둘둘 말아서 핸드백에 넣고 길을 떠났습니다. …땅땅하게 언 내 자식을 내려놓고 누워 있는데 환각이 생겼어요.”
탈북여성들이 북한을 벗어나 제3국에 체류하는 동안 인권을 크게 침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4∼12월 북한이탈주민 여성 26명과 탈북자 사회정착 지원기관 ‘하나원’ 여성 입소자 248명 등을 상대로 조사한 탈북여성 인권침해 실태를 22일 발표했다. 탈북여성이 정착하기까지 겪은 인권침해 실태를 국가기관이 대대적으로 조사해 공개하기는 처음이다.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여성은 대개 착취와 폭력에서 벗어나려고 탈북을 감행한다. 이들은 다른 나라에 머무는 동안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탓에 갖은 불합리를 겪으면서도 숨죽여 지내야 했다.
중국에 체류하는 탈북여성들은 불법체류자 지위를 악용하는 브로커(중개인)와 공안의 추격을 의식해 늘 마음을 졸이고 남을 경계하며 생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현지인이 꺼릴 만큼 고된 일을 하면서도 신분상 약점 때문에 턱없이 적은 급여를 받거나 그마저 떼였다고 전했다.
태국 캄보디아 몽골 등을 거쳐 입국한 여성들은 수용소 경험에 치를 떨었다. 홑몸으로 국경을 넘은 탈북여성들은 제3국에서 한국 입국 절차를 밟는 동안 대부분 수감시설에서 지낸다고 인권위 관계자는 설명했다. 탈북여성들은 수용소에서 화장실 이용을 비롯한 일거수일투족을 통제당하고 이유 없는 폭력에 시달린다. 한 탈북여성은 수용소에서 오후 10시면 문을 잠가서 화장실을 못 가고 쓰레기통에 오줌을 누고 아침에 몰래 비우다 수용소 관리에게 들켜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고 말했다. 탈북에 실패해 북한 수용소에 수감된 여성들의 인권 침해도 상당했다. 한 탈북여성은 북한 수용소에서 아이를 낳은 직후 자신이 보는 앞에서 아이가 살해당했다고 증언했다.
인권위는 “탈북여성들이 국제적 난민임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사회적 주체로 살아가도록 국가와 사회 차원의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조사 성과를 토대로 실질적 북한인권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필요하면 정부에 관련 정책을 권고하겠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