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봉사활동, 인력동원用 전락… 공공기관 서류정리·행정잡무 투입 다반사
입력 2010-02-22 18:51
학생 봉사활동 제도가 교육 당국과 일선 학교의 방치 속에 인력동원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봉사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은 공공기관 서류 정리나 행정 잡무 등에 투입되고 있어 인성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제도의 취지마저 퇴색하고 있다.
1996년 시작된 학생 봉사활동의 종류에는 일손 돕기, 위문, 캠페인, 자선·구호, 환경·시설 보전, 동·하급생 학습지도 등이 있다. 보통 고등학생은 학년 당 20시간씩 60시간 봉사활동을 이수하면 내신 성적 총 300점 중 5%인 15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봉사활동이 행정 잡무 처리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실제 서울시교육청이 운영 중인 ‘학생봉사활동’ 사이트에는 2008년부터 현재까지 201건의 봉사자 모집 공고가 올라와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188건(93.5%)이 관악경찰서의 민원인 안내나 서류 정리 업무였다. 관악서는 2008년 범죄 수사를 담당하는 형사팀 연말 장부 정리를 위해 여중생 한 명을 모집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시 25개 구청 내 자원봉사센터에서 모집하고 있는 봉사활동 500건 중에서도 장애인이나 노인 돕기 등의 봉사활동은 44건에 불과하다. 송파청소년수련관은 총무팀 업무보조 활동으로 학생 봉사자를 모집했다. 강남구의 경우 생활불편사항과 청소년 유해 환경을 신고하면 건당 30분의 봉사활동 인증서를 발급한다. 지난 1월 20일에는 경기도 수원시가 관변 행사인 ‘제2 녹색새마을운동 선포식’을 열고 “행사에 참가하면 봉사활동 4시간을 준다”며 중·고등학생 500여명을 동원했다.
공공기관의 대체 인력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많다. 경기도 고양시 B고등학교에 다니는 박모(18)양은 의무 봉사활동 점수를 채우기 위해 지하철 3호선 대화역에서 14시간 봉사활동을 했다. 하지만 박양은 역사 내 개찰구에서 무임승차를 감시하는 일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박양은 “승객이 한산한 시간에는 역 주변 청소 등 잡일도 했지만 대부분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가 지하철 청소나 무임승차 방지 등 직접 인력을 동원해야 할 업무를 봉사활동으로 대체한 것이다. 지난해 서울메트로는 이 같은 역내 업무에 전년(2만8774명)보다 9056명 증가한 3만7830명의 자원봉사자를 동원했다.
봉사활동이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까지 나왔다. 국내 종합여행사인 H여행사가 올 겨울 판매 중인 봉사활동 인증서 지급 상품 ‘1달러의 기적 앙코르와트 3박5일 여행’의 경우 119만9000원이라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절찬리에 판매됐다. 사설 기관에서 발급하는 인증서는 학교가 봉사 내용을 확인한 뒤 인정 여부를 결정해야 하지만 교사가 모든 기관을 일일이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
고려대 김성일 교육학과 교수는 “현재와 같은 학생 봉사활동은 돈을 받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라며 “학생들이 의미 있는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의무 시간과 인증서 발급 기관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김민정 대학생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