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위기처방 금과옥조 문제 있다”… 내부서 “인플레 억제·개방 재검토해야” 목소리
입력 2010-02-22 21:17
국제통화기금(IMF)이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에 권유해 온 ‘인플레이션 억제와 금융 개방’이라는 처방에 대해 내부로부터 문제가 제기됐다. 오히려 다소 높은 물가 상승률과 자본시장 규제가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이자 경제자문관인 올리비에 블랜차드는 오는 25일 서울에서 발표할 논문을 통해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억제 목표를 연 4%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 2%의 인플레이션을 최상으로 여기는 기존 개념을 뒤집는 것이다. 블랜차드는 “평소에 다소 높은 인플레이션과 이자율을 유지하면, 위기가 닥쳤을 때 이자율을 낮춰 생산 감소와 재정 악화를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IMF가 금융위기를 겪는 나라에 금리 인상을 권유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처방이다. 금융위기 상황에서는 대체로 통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겪는다. 따라서 IMF는 금리를 높여서 시중에 풀린 돈을 은행으로 회수하고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처방을 제시해 왔다.
또 다른 IMF 고위관료들은 국제경제 전문가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금융개방 정책에도 의문을 던졌다. 조너선 오스트리 선임연구원을 비롯한 6명의 IMF 연구위원들은 지난 1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금융 개방이 근본적으로 권장할 만한 정책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국제적인 자본은 한곳으로 몰려다니는 경향이 있어 금융시장이 정상적일 때도 (과도한 개방은) 거품과 투기를 불러올 수 있다”면서 “일시적인 환투기를 막는 데는 규제가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1990년대 후반 급격한 금융시장의 개방 결과 외환위기를 겪었다. 당시 정부는 IMF의 권고에 따라 한때 금리가 연 20%까지 오르도록 방치했었다. 치솟는 금리에 수많은 중소기업이 무너졌고, 서민들은 빚 부담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비극이 잇따랐다. 그러나 파생금융상품으로 인한 미국의 금융위기가 발발했을 때, 미국은 정반대의 처방을 내렸다. 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췄고,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도 상태의 금융기관을 살렸다.
블랜차드와 오스트리 등의 보고서는 이 같은 모순에 대해 IMF 내부에서도 기존의 ‘고금리-금융 개방’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하버드대의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22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IMF가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기존 정책을 재검토해 왔다면서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연 2%의 물가상승률이 최고라고 주장해온 IMF가 갑자기 입장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사이먼 존슨 교수도 “금융산업에 대한 더 강하고 광범위한 규제가 전 세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