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8) 쑥 맛이 쓰다고?

입력 2010-02-22 18:09


우수가 지나야 강이 풀린다. 돋을볕 먼저 본 오리가 강물에 새 을(乙) 자를 그린다. 햇발 좋은 언덕에는 봄이 꼼지락거린다. 해토머리 헐거운 흙 사이로 어린 쑥이 올라온다. 물이랑 살랑대고 흙내 물큰하면 봄 자취 완연하다.



민둥산 너머로 제비 한 마리 강남에서 돌아왔다. 촌부들이 들판에서 쑥을 캔다. 홑겹 걸친 걸로 봐 비탈에 앉은 봄볕이 따사롭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아낙네는 속바지가 드러나도록 치마를 끌어올려 앞 춤에 동여맸다. 무릎 굽혀 일하기에 편한 차림새다. 망태기 들고 손칼을 쥔 아낙은 발치에 돋아난 쑥 두어 낱을 막 캐려는 참이다. 고개를 돌린 아낙이 놓친 쑥 하나를 뒤늦게 보고 반색한다. 시골 풍정은 예나 지금이나 빼닮았다.

쓰디쓴 쑥이 꽃보다 정겨운 이 그림은 선비화가로 이름 높은 윤두서가 그렸다. 과거에 붙고도 벼슬을 마다한 그는 시서화로 날렸고 실학에 밝았다. 민촌에 정을 붙여 아랫사람들의 남루한 일상을 자주 그렸다. 시골 물정을 살갑게 살핀 도량은 집안 내림이었다. 그는 ‘어부사시사’를 노래한 고산 윤선도의 증손이다. ‘목민심서’를 지은 다산 정약용이 외증손이다.

농사는 농군에게 묻고 봄나물은 아낙에게 물으랬다. 모름지기 시골을 알아야 쑥 맛이 달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학고재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