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상의 성경과골프(44)

입력 2010-02-22 10:31

늘 깨어서 집중하라

"골프 코스에서는 늘 현재에 집중하라. 과거는 잊어버리고, 또 너무 멀리까지 생각하지 마라"

"On the golf course, concentrate on the present, forget the past, and don't look too far ahead."(Judy Rankin)

"골프의 성패는 집중의 결과에 따른다. 언제든지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 어느 프로의 말이다. 골프 한 라운드를 통상 4시간 반으로 볼 때 약 10%에 해당하는 30분 정도만 잘 집중할 수 있다면 대체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플레이어가 샷 또는 퍼팅을 위해 마음의 준비를 시작해서 샷을 마치는 순간까지 대략 20초의 시간이 걸린다. 보기 플레이를 하면 20초X90 회이니 1800초, 즉 30분에 해당된다. 그 중에서 실제로 샷 또는 퍼팅 동작만 계산한다면 1초X90회, 즉 90초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 90초의 샷과 퍼팅에 집중을 잘 하기 위해 30분이라는 프리샷 루틴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골프 규칙 제1장 에티켓, 코스에서의 행동 편에는, 항상 다른 플레이어들을 배려하여야 함을 누차에 걸쳐 강조하고, 그 실례로 ‘소란이나 정신 집중 방해의 금지’의 규정이 있다. 그만큼 정신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에 동반자로서의 에티켓을 강조하는 것이다.

몇 년 전에 휴가차 아내와 태국 골프장에서 라운드 할 때였다. 아내는 '있으면 치고 없으면 말고'의 느슨한 골프를 치는 전형적인 더블보기 플레이어이다. 한 샷 한 샷에 정성을 들여서 치는 나와는 아주 대조적으로, 아내는 그냥 걷는 것보다는 볼이라도 한 번 치면서 풀밭을 걷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식으로 늘 룰루랄라 골프를 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혼자 온 서양인과 함께 셋이서 라운드하게 되었다. 나와 둘이 칠 때에는 전혀 집중하지 않으며 골프인지 필드하키인지 모를 정도로 볼을 굴리고 다니던 아내가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든 샷이 붕붕 떠다니고, 어프로치는 원 퍼트 사정 거리까지 붙기 시작했고, 롱퍼트도 기브 거리에 자주 들어가는 훌륭한 래그 퍼팅을 하는 것이었다. 한 두 개의 선심성 퍼팅 기브와 세컨 샷 멀리건도 있었지만, 늘상 보여주던 세 자리에서 백파의 숫자로 스코어가 바뀐 것이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요?" 묻는 나에게 "나는 지금 머리가 터질 지경이랍니다" 라고 아내는 대답했다. 모르는 외국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의 집중을 하였더니 스코어는 좋아졌지만, 에너지 소비가 너무 많았다며 힘들어서 오후에는 못 치겠다고 하며 웃었다. 아내는 그날 '집중을 잘 하면 꽤 좋은 스코어를 만들 수 있다'는 좋은 교훈을 얻었다.

장마철 어느 날 K프로는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볼을 치면서 +2의 저조한 성적으로 전반을 마치고 내기에서도 약간의 돈을 잃었다. 함께 라운드 하던 아마추어 고수 선배들이 "후반에는 프로에게 만회할 기회를 주자"며 단위를 두 배로 올리자고 했다. 자존심이 다소 상했지만, 꾹 참고 입을 굳게 다물며 오로지 한 타 한 타에 집중하겠다고 마음을 먹자 그의 샷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후반 다섯 홀 연속으로 버디를 잡았다. 그늘집에 잠깐 들어갔다 나오니 비바람이 조금 불기 시작했다. 그의 티샷은 페어웨이 정중앙에 안착했고, 홀까지는 130야드, 이제 6연속 버디라는 새로운 기록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우산을 페어웨이에 던져 놓고 어드레스를 잡았다. 완벽한 백스윙에 이은 힘찬 스윙 때에 뒤에서 불어온 돌풍에 우산이 확 펴지면서 앞으로 날아갔고, K프로는 깜짝 놀라는 가운데 멈칫하며 제대로 스윙을 하지 못했다. 그의 볼은 형편없이 우측으로 날더니 OB 말뚝을 넘어 숲속으로 사라졌고 그의 기록 갱신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 날 이후 K프로는 아주 확실한 습관이 생겼다. 언제나 유비무환(有備無患)을 부르짖으며 집중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원초적으로 없앤다는 것이다. 코스에서 우산을 내려놓을 때에도 꼭 단추를 잠가서 볼 위치보다 한참 떨어진 곳에 놓는다. 비가 오는 날에는 퍼팅 하기 전에 모자 뒤쪽을 잡고 세게 물을 털어서 쓰거나 아예 모자를 거꾸로 써서 어떤 경우라도 퍼팅을 할 때에 물이 머리에서 떨어지는 일을 없앤다. 집중의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막 13:33)

<김덕상.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