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독일 여성총리 앙겔라 메르켈의 신앙

입력 2010-02-21 17:50


“우리가 어떻게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보존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살아 있는 신앙, 예배의 감격을 느끼는 삶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 사랑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참된 목적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전형적인 목회자의 설교문 같지만 이것은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56.사진)의 연설문이다. 2005년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교회의 날에 기독민주당 의장 자격으로 참석했던 메르켈은 구약성경의 예언서인 말라기서를 인용하며 독일 기독교인의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마치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무신론자처럼 살고 있지는 않는가?”라고 반문하고 “예언자 말라기의 시대적 배경이 오늘날과 유사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기독교를 단순히 도덕적 차원의 명령이나 예배 참석 없이도 사회적 실천을 통해 얼마든지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독일 기독교인들 사이에 만연한 신앙적 자유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이것은 신앙과 정치는 분명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그녀의 확고한 신앙관에서 나온 지론이기도 하다.

2005년 총리 취임사에서도 연설비서관이 준비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국 독일을 축복하시길….”이란 문장을 그녀는 삭제해 버렸다. 기독민주당의 전임 의장이자 전 총리였던 헬무트 콜의 신년사에서는 으레 볼 수 있는 문구였다. 슈뢰더 전임 총리가 정치적 목적으로 예배를 참석했던 것과 달리 그녀는 공개적인 예배를 참석하지 않거나 맨 앞자리를 피하곤 했다. 이 때문에 수많은 독일인들은 ‘과연 메르켈은 진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고 있다. 심지어 독일 내 선교사들조차도 “메르켈은 명목상의 기독교인인 것 같다”고 말한다.

메르켈은 동독 루터교회 목사이자 설교아카데미 원장이었던 아버지 카스너로부터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청년조직인 자유청년동맹에 가입해서도 메르켈이 신앙인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신앙교육의 힘이 컸다고 그녀는 고백했다.

1989년 독일 통일 후 동독 사회 내 교회 조직을 기반으로 ‘제 3의 길’을 추구했던 ‘민주개벽’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그녀는 이후 기독민주당과의 합당을 거쳐 여성청소년부장관, 환경부장관, 여성 총리로 선출됐다. 메르켈 총리가 추구하는 정책은 환경 보존, 가족 복지, 탁태 및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 지원 3가지로 요약된다. 그녀는 95년 UN 기후 정책회의에서 ‘베를린 선언’을 이끌어내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줄이는 97년 12월 교토의정서 채택을 견인해 냈다. 95년 산모의 낙태 최종 시술권을 인정한 낙태시술허용 개정안 통과, 2006년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 지원 당내 과반지지 확보 등을 이끌어냈다. 그녀는 수많은 논쟁 과정에서 성경 말씀이나 기독교적 가치를 인용하며 국민들이나 당원들을 설득했다. 한마디로 여성이자 기독교인의 면모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독일 교회 프레스센터 폴커 레징 편집주간은 “메르켈 총리는 정치 현장에서 스스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말없이 기독교의 숭고한 가치를 행동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메르켈 총리의 신앙 스토리는 최근 출간된 ‘그리스도인 앙겔라 메르켈’(한들출판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

앙겔라 메르켈 프로필

1954년 7월17일 출생, 57년 템플린으로 이주, 발트호프 농장 소재 목사 사택에 거주, 73년 라이프치히(구 칼 막스 대학)에서 물리학 공부 시작, 74년 울리히 메르켈과 첫 번째 결혼, 78년 물리학 석사과정 졸업 뒤 물리학 박사과정 시작, 82년 이혼, 자녀 없음, 86년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 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후 12월 민주화운동단체인 ‘민주 개벽’(DA)에 가입, 언론 홍보담당관으로 활동, 90년 3월18일 동독 자유총선거 후 선출된 로타 드마지에르 총리 밑에서 정부 대변인으로 활동, 10월 2일 기독민주당 입당, 12월2일 독일총선거에서 오스티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 91년 1월18일 헬무트 콜 총리 내각 여성청소년부장관 임명, 92년 기독민주당 개신교 노동자위원회 위원장 위촉, 94년 10월16일 총리 후보 경선출마 선언, 11월17일 환경부장관 임명, 98년 9월27일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이 총선에서 승리. 환경부장관직 사임. 11월7일 기독민주당 사무총장에 선출. 12월30일 오랜 친구관계였던 훔볼트대학 화학과 요아킴 자우어와 결혼. 2000년 4월10일 기독민주당 의장에 선출, 2002년 기독민주당 총리 후보로 선출, 9월23일 사회민주당 총리 후보가 박빙 승부로 총리에 당선,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 원내총무로 임명, 2005년 5월30일 기독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차기 총리 후보에 지명, 11월22일 연방의회가 메르켈을 최초 여성총리로 선출, 2009년 9월27일 사회민주당 총리후보 프랑크-발터 스타인마이어와의 대결에서 승리
-‘그리스도인 앙겔라 메르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