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독일 총리 “유럽 기독인 정체성 확립”

입력 2010-02-21 20:12

“우리가 어떻게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보존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살아 있는 신앙, 예배의 감격을 느끼는 삶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참된 목적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전형적인 목회자의 설교문 같지만 이것은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56)의 연설문이다. 2005년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개신교회의 날에 기독민주당 의장 자격으로 참석했던 메르켈은 구약성경의 예언서인 말라기서를 인용하며 독일 기독교인의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메르켈은 이 자리에서 “대부분 유럽인이 마치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무신론자처럼 살고 있지는 않는가?”라고 반문하고 “예언자 말라기의 시대적 배경이 오늘날과 유사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기독교를 단순히 도덕적 차원의 명령이나 예배 참석 없이도 사회적 실천을 통해 얼마든지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독일 기독교인들 사이에 만연한 신앙적 자유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메르켈은 콜이나 슈레더 전임 총리가 신년사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국 독일을 축복하시길…”이란 문장을 사용하거나 공적 예배장소에서 맨 앞자리에 앉는 일도 피했다. 이 때문에 수많은 독일인은 ‘과연 메르켈은 진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고 있다. 그러나 메르켈은 신앙과 정치는 분명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메르켈은 동독 루터교회 목사이자 설교아카데미 원장이었던 아버지 카스너로부터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청년조직인 자유청년동맹에 가입해서도 메르켈이 신앙인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신앙교육의 힘이 컸다고 그는 고백했다.

메르켈 총리의 신앙 스토리는 최근 출간된 ‘그리스도인 앙겔라 메르켈’(한들출판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