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애옥] 싸이, 김장훈과 대중예술

입력 2010-02-21 19:22


학위 종합시험을 치르고 뒤풀이를 콘서트로 대신하자는 제안 덕에 김장훈·싸이의 완타치 공연을 보았다. ‘와서 보라!’는 말을 체험한 듯 충일감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었다. 아이돌 스타만큼 고정 팬이 많은 두 가수의 공연 관람은 조명과 음향, 무대장치 등 발전한 우리 공연예술의 현주소를 실감할 기회가 되었다.

무엇보다 대중예술의 환희와 치유를 경험하였다. 에너지의 파장이 엄청난 두 가수의 공연은 의자가 소용없게 된 스탠딩 관객들의 야광봉 군무와 함성이 넘치는 축제의 장이면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는 현장이기도 했다.

거기에는 틀을 벗어던진 가수와 관객이 있었다. 싸이는 두 아이의 아빠라고 밝히며 군대를 두 번이나 다녀온 아픔을 익살로 풀며 6년 만의 팬들과의 소통 현장을 종횡무진 누볐고, 기부천사 김장훈은 마흔을 넘긴 나이를 스스럼없이 밝히며 신비감을 필수로 해왔던 연예인의 고정 틀을 벗어던졌다.

틀리다는 것은 틀이 다르다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고정관념, 고정틀을 벗어나면 틀릴 일이 없다는 해석도 될 수 있겠다. 그런 가수에게 관객은 “박재상(싸이의 본명) 사랑해요!”를 연이어 외쳤고, 중년 남자 김장훈의 브라운 아이드 걸스 여장 댄스에 환호를 보냈다. 열광하는 20대 팬들의 틈바구니에서 전혀 기죽지 않고 굼뜨게 몸을 움직이며 콘서트를 즐기는 차원을 넘어 적극 참여하는 중년 남녀 관객들은 삶의 무게를 다 토해내라는 가수의 주문에 따라 방방 뜨며 소리를 질러댔다.

대중예술의 미학은 이런 것이 아닐까. 금지되고 억압된 욕망들을 뿜어내는 대중예술의 오락적 기능을 과연 고급예술이 이렇게 역동적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문화의 본질이 결국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이라면 가장 이상적으로 일치하는 현대생활은 예술의 영역이다.

대중예술이 잠시 제 정신을 잃게 하는 몽상적 환상이면 어떤가. 꼭 감성과 이성의 일정한 균형을 유지하며 우아하게 향유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대중예술이 다소 통속적이고 저급하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다가올지라도 결국은 사랑과 감사의 체험이 된다면 고급예술이 주는 에너지와 비교하여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살면서 우리는 때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 욕망을 조절할 수 없는 감성의 문제를 만나기도 하고, 물질과 인간관계 앞에서 진정한 개인적 반응을 발현하기 어려운 경우에 처하게 된다. 이럴 때 무조건 내가 늘 보는 거울 너머의 세상으로 잠시 여행을 떠나듯 아이돌 콘서트 장을 경험해본다든지, 대학마다 펼쳐지는 축제 현장을 손님 되어 어슬렁거려본다든지, 그도 아니면 품바타령 동영상이라도 보면 어떨가.

고정된 틀을 벗어나는 대중예술 체험을 해보는 편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보다 훨씬 생명력 있는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저지르는 자의 몫이라 하지 않는가.

김애옥 동아방송예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