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 8년 ‘한빛예술단’ 공개오디션 르포] “음악으로 찾은 빛 희망도 찾았어요”
입력 2010-02-19 18:34
무대 위에 마림바, 드럼, 그랜드 피아노가 번쩍였다. 멀리서 악기 소리, 가수들의 발성연습 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왔다. 그러나 66㎡(20평) 남짓 되는 무대에는 긴 정적이 흘렀다.
긴장이 고조될 무렵 침묵을 깨는 종이 울리고 사회자가 윤정선(29·여)씨를 호명했다. 윤씨는 왼손으로는 바이올린을 움켜잡고 다른 한 손은 스태프 팔에 의지해 무대 중앙으로 나왔다. 눈을 감고 긴 호흡을 내쉬었다. 곧 익숙한 선율이 흘러 나왔다.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가 최근 갈라 쇼 배경음악으로 선곡한 타이스의 명상곡이다. 긴장한 탓에 활을 켜는 손이 떨려 한마디 이탈음이 났지만 심사위원과 대기자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19일 오후 서울 수유동 한빛예술학교 4층 강당에 시각장애인들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 나왔다. 지난해 TV 예능프로그램 출연으로 유명해진 한빛예술단 공개오디션이다. 장애 탓에 무대에 오르내리는 걸음은 느리고 조심스러웠지만 연주는 거침없었다.
머뭇머뭇 오디션장에 들어온 사람들은 경쟁자의 수준 높은 연주를 들으며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바리톤 김형진(35·가명)씨가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나는 이 거리의 만능 일꾼(Largo al Factotum)’을 불렀을 땐 모두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는 인디애나주립대에서 오페라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친 유학파 성악가다.
검은색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1급 시각장애인 김한웅(22)씨도 무대에 섰다. 그는 10초 이상 한 곳을 응시하기 힘들 정도로 장애가 심했다. 하지만 피아노 연주는 165㎝의 가냘픈 몸에서 나온 소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다. 그는 피아노 전공자들이 대회 참가 때 자주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비창 1악장을 선곡했다.
예술단이 유명해진 만큼 오디션 참가자들의 면면도 다양했다. 트럼본을 연주한 양이훈(35)씨는 대구 예술대학에서 관현악을 전공했고 최근까지 대구 그랜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수석단원으로 일했다. 장애인 록밴드 ‘4번 출구’에서 건반 파트를 맡고 있는 윤형진(26)씨도 오디션에 참가했다.
한빛예술단은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전문 연주단으로 예비 사회적기업이다. 안마사나 침구사로 일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음악이라는 새로운 꿈을 심어주기 위해 시작됐다.
오디션에 참가한 기타리스트 유재국(29)씨 역시 부산맹학교를 졸업한 뒤 안마사로 일했지만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을 버릴 수 없어 오디션에 참가했다. 유씨는 “윤도현 조용필 같은 가수가 되는 게 꿈이다”며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발휘해 비장애인과 어울리며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김양수 한빛예술단 이사장은 “시각장애인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지만 청각과 집중력이 뛰어나고 감정도 풍부해 예술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며 “직업 음악인으로서 재능을 키워 당당히 삶을 개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