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전 경기 모두 끝낸 이상화 “23등 했어도 즐거워… 이젠 동료 응원해야죠”
입력 2010-02-19 18:21
이상화(21·한국체대)는 모든 걸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표정과 행동, 타인을 대하는 자세에서 금메달 이전과 이후가 달랐다. 이상화는 자신에게 모든 것이었던 금메달을 영원히 간직하게 되면서 동시에 모든 걸 내려놓은 모습이었다.
19일(이하 한국시간) 밴쿠버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이상화를 만났다. 이틀 전 여자 500m 금메달로 ‘인생 역전’을 이룬 이상화는 이날 1000m에서 전체 36명 가운데 23위에 그쳤다. 이상화는 “23등밖에 못하고도 즐겁게 인터뷰하는 선수는 저밖에 없을 거예요”라며 해맑게 웃었다. 얼굴은 평화로웠고, 오늘 성적이 나빴다고 겸연쩍어 하지도 않았다. 어른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화는 맘껏 쉬고 싶지 않느냐는 물음에 “오늘로 제 경기는 다 끝났지만 같은 방을 쓰는 (대표팀) 언니가 아직 경기가 남아 있으니까 거기에 맞춰드려야죠”라고 했다.
이상화는 동갑내기 모태범과는 좀 다르다. 모태범에게 없는 한국적 한(恨)이 이상화에게는 있다. 이상화가 풍족하지 못한 환경에서 운동을 해서만은 아니다. 목표를 정한 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성취의 기쁨을 표현하는 방식이 한국적 삶과 닮았다.
이상화는 “한국 갈 때 (항공기) 비즈니스석을 타려고 하는데 (좌석승급을 하려면) 내 마일리지를 공제해야 돼요. 캐나다 올 때도 그랬어요”라고 말했다. 두 다리가 가장 중요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장거리 비행 때 비즈니스석을 원하지만 대한체육회 규정상 모든 선수는 이코노미석을 타야 한다. 이상화가 뭘 바라고 한 말은 아니고, 한국 취재진은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는지 자연스럽게 대화하다 나온 얘기였다.
밝고 긍정적인 태도는 이상화도 마찬가지다. 이상화는 금메달은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금메달은 감독님 방(밴쿠버 선수촌 빌리지)에 있어요. 감독님이 (농담으로) 금메달 씹어 드셨다는데”라며 보통 여대생처럼 깔깔댔다. 이어 “밴쿠버에서 (인터넷으로) 내 기사 보는데 되게 웃겨요. 기사 댓글에 ‘이상화 엉덩이 봐라, 허벅지 봐라’ 이런 글 올라오던데 그거 보고도 되게 웃었어요”라고 했다.
김관규 대표팀 감독은 “상화는 화통한 성격이다. 나한테 눈물 쏙 빠지도록 혼나고도 얼마 안 있으면 금방 밝게 웃는다. 운동선수에게 꼭 필요한 성격”이라고 칭찬했다.
이상화는 이날 1000m 성적이 안 좋았기 때문에 믹스트존에 내려오지 않고 그냥 숙소로 갔어도 크게 상관없었다. 하지만 이상화는 믹스트존행을 택했다. 금메달리스트로서 국민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밴쿠버에 오기 전인 지난달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가진 미디어데이 행사 때 사람들 앞에 나서길 꺼리던 이상화는 어느새 성숙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밴쿠버=이용훈 기자 co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