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세 번째 시집 ‘찬란’… 내 안의 또 다른 나 바닥 없는 깊은 시선

입력 2010-02-19 17:57


설명할 언어를 찾지 못할 마음의 일이 어디 한 둘이랴. 이마에 부딪는 환영 같은 사람이 어디 한 둘이랴. 피치 못할 마음의 일을 살뜰히 살피는 시인의 시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스하다. 시인 이병률(43)의 세 번째 시집 ‘찬란’(문학과지성사)을 펼쳐든 첫 인상이다.

여행에서 만난 풍경들과 상념을 담은 산문집 ‘끌림’(2007)을 통해 세상 밖을 보았던 시인의 언어가 이번 시집에서는 인간의 내면을 향한다. 내 안에 있는 또다른 나를 인식하며, 바닥없는 슬픔을 응시하는 시인의 깊고 조용한 시선은 집 안의 화분에 꽂힌다.

“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중략) 찬란이 아니면 다 그만이다/죽음 앞에서 모든 목숨은/찬란의 끝에서 걸쇠를 건져 올려 마음에 걸 것이니”(‘찬란’ 중)

하지만 ‘찬란의 끝에서 걸쇠를 건져 올려 마음에 걸 것이니’라니. 오도송(悟道頌)을 연상케 하는 이 모호한 시편들을 이해하는 일에 독일에 거주하는 허수경 시인이 해설을 맡아 수고하고 있다.

허수경은 이병률의 시를 두고 이렇게 적었다. “영혼이 문제였다. 그 모호한 말, 영혼이 언제나 문제였다.(중략) 그리고 영원히 빛이 들어가지 않아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어느 오지를 향한 그리움이다.”

그리움이야말로 ‘끌림’일터다. ‘끌림’이라는 단어로 이병률의 시세계를 평한 허수경은 “이병률식으로 말한다면, ‘끌림’은 불가해한 ‘영혼의 풍경’을 드러내는 것이며, 극적인 양상을 보듬어 안아버리는 것이자, 이 우주를 지탱하는 완벽한 질서”라고 했다. 그러니 이병률의 작시법은 ‘영혼의 풍경 찾기’라는 말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전작 ‘바람의 사생활’ 이후 3년 만에 출간된 이번 시집은 ‘살아 있음’을 통해 만난 생의 떨림으로 가득하다. 지극히 투명하고 눈부신 모든 생, 그 ‘찬란’의 순간을 시인은 눈으로 손끝으로, 귀와 입으로 더듬어 감각해낸다.

그렇다면 ‘찬란’은 무엇일까. 시인은 말한다.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다고. 빛이 번쩍거리거나 수많은 불빛이 빛나는 상태, 또는 그 빛이 매우 밝고 강렬하여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운 상태. 시인은 이 시집에서 살아 있음에 대한 감탄이자, 의지를 노래한다.

양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