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서실 출신 유통업계 잡았다

입력 2010-02-18 20:22


신세계, 롯데백화점, 홈플러스 최고경영자(CEO) 이력서엔 공통점이 있다. 삼성그룹 비서실 경력이다.

이승한(64) 홈플러스 회장, 이철우(67) 롯데쇼핑 사장, 구학서(64) 신세계 회장, 석강(61) 신세계백화점 고문이 삼성 비서실에서 마케팅과 투자 감각 등을 익혔다. 유통업계에 “대표이사 하려면 삼성 비서실 거쳐야 한다”는 얘기가 도는 이유다.

1970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한 이승한 회장은 74∼77년 비서실 기획·마케팅팀장(과장), 94∼97년 비서실 신경영팀장(부사장)을 거쳤다. 이 회장은 97년 삼성물산 유통부문 대표이사에 올라 13년째 CEO를 맡고 있다. 99년 점포 2개, 업계 14위로 출발한 홈플러스를 2002년 업계 2위로 끌어올렸다. 이 회장은 18일 “인재를 귀하게 여기는 인본주의 사상과 10년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을 배웠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74년쯤 대기업 최초로 비서실에 마케팅팀을 신설했다. 당시는 마케팅보다 판매란 용어가 널리 쓰였던 시절이다. ‘한국마케팅개발센터’ 재직 중 74년 삼성으로 스카우트되면서 비서실 마케팅팀에서 2년여간 근무했던 ‘골수 롯데맨’ 이철우 사장은 “가전사업이 이익도 못 내던 시절에 마케팅팀을 만든 건 정말 대단한 결정이었다”며 “삼성은 새로운 시도에서 늘 앞섰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판도를 바꾼 ‘재무통’도 삼성 비서실에서 나왔다. 이명희(67·여) 신세계 회장은 “구학서 회장은 작고하신 아버지 이병철 회장에게서 투자, 자금운용 등을 배운 성취형 인재”라고 자주 소개한다. 76년 삼성 비서실 재무팀에서 일했던 구 회장은 99년 신세계 대표이사에 올라 카드사업부 등을 매각한 뒤 이마트 부지를 매입했다. 땅값이 떨어진 시절 확보한 부지는 ‘1등 할인점’의 발판이 됐다.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 신세계백화점 대표이사를 지낸 석강 고문은 81∼84년 삼성 비서실 과장을 거쳤다. 그는 “백화점은 고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곳이어야 한다는 선대 회장 지론에 따라 차별화된 마케팅에 집중해왔다”고 말했다.

유병석 기자 bs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