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朴좌장 김무성 ‘돌출 제안’ 파장… 소신과 배신 사이 싸늘하게 무시된 ‘절충안’

입력 2010-02-19 01:18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은 세종시가 원안대로 추진돼서는 안 된다는 게 오랜 소신이었다. 다만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가 원안고수 입장이어서 그는 소신과 현실 사이에서 늘 고민을 해왔다. 박 전 대표가 정치적 명운을 걸고 있는 세종시 문제에서 친박계 좌장격인 그가 소신을 밝히는 것은 박 전 대표와의 결별 선언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의리’와 ‘소신’ 중 어떤 것도 버리기 힘들다는 게 그의 딜레마였다.

그가 18일 제안한 행정부처 대신 독립 국가기관 7곳을 이전토록 하는 절충안은 그런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박 전 대표와 여권 주류가 함께 윈-윈할 수 있는 절충안이라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김 의원 측근은 “김 의원은 행정부처 분할을 양심상 도저히 못 받아들이겠다고 수차례 토로해왔다”면서 “정치적 해석을 하지 말고, 이번 제안은 정말 순수한 동기로 믿어 달라”고 말했다.

김 의원도 “세종시로 국론이 분열되고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진 것을 보면서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도 없다”면서 “국회에서 정치가 실종되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은 정치권의 공멸 위기, 대한민국 정치의 위기”라고 비판했다.

박 전 대표에게는 “관성으로 곧바로 거부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세종시를 통해 양보할 수 없는 대권 전초전을 치르고 있는 박 전 대표에게 거슬리는 얘기일 수도 있는 요청이었다. 박 전 대표에게서 돌아온 답은 싸늘했다. 당 안팎에선 박 전 대표가 김 의원에게 ‘내 곁을 떠나라’는 메시지를 담은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김 의원은 박 전 대표의 반응을 접한 뒤 “나도 애국하는 마음에서 고민 끝에 이런 절충안을 내놨다는 점을 고려, 다시 한번 모든 감정을 초월해 재고해줄 것을 (박 전 대표에게) 부탁드린다”고 거듭 당부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원내대표 추대설과 입각설 등 고비마다 박 전 대표의 반대로 좌절을 거듭했던 김 의원이 이제 박 전 대표와 결별하고 독자적 정치행보를 시작할 것이란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 6년간 이어졌던 애증의 관계가 막을 내린 것이다.

김 의원은 2005년 박 전 대표 재임 시절 사무총장으로 정치적 인연을 맺은 뒤 지난 대선 경선 당시 박 전 대표를 적극 도왔던 대가로 ‘보복공천’의 희생양이 됐다. 그는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고 ‘살아서 돌아오라’는 박 전 대표의 말대로 기사회생해 친박 좌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친박 좌장은 박 전 대표가 붙여준 애칭이다. 그러나 지난해 초부터 기미를 보인 둘 사이의 간극은 결국 세종시를 둘러싼 인식차를 넘지 못한 채 파국을 맞았다.

노석철 기자 schroh@kmib.co.kr